464일 천막 지킨 노동자들…그들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하청사 '포운' 노사 합의문 채택
포운 노조 "대체인력 투입에 파업 실효성 떨어져…단체행동 유명무실"
천막농성 중단했지만 구조적 문제 그대로…노사분규 불씨 여전
▶ 글 싣는 순서 |
① 하청사 화물 운전기사, 제각각 유가연동 기준에 '한숨' ② 464일간 천막 지킨 노동자들…그들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계속) |
농성 464일 만에 합의하긴 했지만…
박옥경 광양기계지역금속운수산업노조 위원장(㈜포운 노조 위원장)은 지난 3일 오전 포스코 광양제철소 정문에 있는 천막농성장을 거둬들이며 이같이 말했다.
포운 노조는 앞서 같은 달 1일 고용노동부 여수지청과 한국노총 금속노련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진 사측과의 교섭에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를 통과하면서 천막농성도 돌입 464일 만에 중단하기로 했다.
합의안은 임금협약과 단체협약 사항 등 모두 9개 안건으로 이뤄졌다.
주요 내용은 2021년 임금총액 5.5%, 2022년 임금 4.1% 인상을 비롯해 올해 임금교섭을 사측에 위임하는 대신 포스코의 노무비 인상액을 100% 적용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타결 격려금 지급(220명 대상, 총 4억 원 규모)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현행 2천 시간에서 3천 시간 이내로 변경 △노사파트너십 7300만 원 지급 등 단체협약 사항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
하지만 노사분규의 핵심 중 하나였던 호봉 인상분 누락 문제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노조가 한발 물러섰다.
합의에 이른 조합원들의 얼굴이 여전히 그늘진 이유다.
사실 이들은 400일 넘는 길거리 농성을 하는 동안 총파업 한번 하지 못하고 현업은 현업대로 유지해왔다.
대체인력이라도 투입되면, 파업 역시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자신들과 같이 장기간 투쟁에 나서는 하청 노동자가 있어서는 안된다며 그동안의 고충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현업과 병행한 거리 농성…"선택지가 없었다"
성암산업의 업무가 복수의 업체로 넘어가면서 성암산업노조는 이에 반발했으며 같은 해 7월 업체들과 '1년 뒤 나눠진 회사를 1개사(포운)로 통합한다'는 취지로 합의를 했다.
이후 포운으로 고용승계는 이뤄졌지만 임금 등 노동조건을 유지한다는 합의는 지켜지지 않다는 게 노조 측의 입장으로, 이들은 노동3권 보장과 호봉 인상분 누락 등에 항의해 왔다.
노조는 2021년 12월 교섭결렬 이후 부분 파업(태업) 등 쟁의에 돌입했지만 3개월여 만에 단체행동을 무기한 보류하기로 하고 길거리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일상적으로 조업에 임하면서 천막농성장을 운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태업 등 단체행동은 쉽게 무력화됐고 조합원들의 임금만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사용자로 인정되는 하청사는 직접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없지만 원청은 다른 하청사와 계약을 맺고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쟁의 과정에서 태업으로 인한 임금삭감 내용도 사측에 의해 두 차례나 가정으로 발송돼 조합원들은 가족의 걱정스런 시선까지 떠안아야 했다.
애초 단체행동이라는 선택이 어려운 상황에서 포운 노조가 3교대 근무 후 또다시 3교대로 천막농성장을 지키며 힘겨운 농성을 벌인 배경이다.
천막농성 464일 만에 노사분규는 어느 정도 정리됐지만 긴시간 천막농성을 벌이는 과정에서 128명이었던 조합원은 109명 수준으로 줄었다.
'파업, 할 테면 하라'는 강경기조에 격화된 갈등
과거에는 원청이 하청사 노조의 단체행동에 대해 무게감을 갖고 신중히 대처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맞선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하청사 노조가 단체행동에 나서더라도 결국 대체인력 투입이라는 카드를 꺼내드는 순간, 원청과 사측에 맞서는 하청사 노동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청사 노사분규에 대해 노동자들이 원청에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요구하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원청사에 노조가 생기면서 포스코가 하청사 노사분규에는 손을 뗐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위원장은 "예전에는 하청사 노사분규가 발생하면 포스코에서 직접 사업장을 찾아 의견을 들었지만 지금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원청사 노조가 꾸려지다보니 하청사 노조는 하청사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기조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원청의 의도적인 무관심은 하청사들의 굳건한 결속으로 이어진다. 광양제철소협력사협의회가 임금 상승폭 등을 일괄 적용하는 상황에서 하청사 노동환경이 개선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지난 5월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금속노련의 김만재 위원장과 김준영 사무처장이 광양제철소 농성장에 합류한 것도, 노사 갈등이 진전없이 장기간 쌓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교섭은 잇따라 파행됐고, 급기야 김 사무처장은 7m 높이의 망루에 올라 농성을 벌였다가 경찰과 충돌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했고 노동계와 정부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청 노동자들 "대체 투입 막을 법적 근거 있어야"
일명 '투쟁 조끼'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생계를 위해 마지막 붙잡은 천막농성을 태업이나 파업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까지, 한 가정의 가장이자 소중한 가족인 이들은 지금껏 따뜻한 격려보다 가시 돋힌 말들을 더 들어야 했다.
실제 천막농성 기간 국무총리를 비롯한 포스코그룹 간부, 지자체장 모두 광양제철소 정문에 있는 천막농성장을 지나갔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원청의 방임과 사회적 무관심이 하청사 노사분규에 대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협력사와 협력사 노조 간의 협상테이블에는 개입할 수도, 개입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협력사와 협력사 노조 간의 노사 갈등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며 "최근 노사분규를 겪은 협력사 뿐만 아니라 다른 협력사에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에 대해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위원장은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을 막을 법적 근거가 생기면 하청사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이 원청의 조업 손실로 온전히 이어지고 이는 다시 하청사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으로 직결된다"며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는 장치가 하청사 노동자와 원청 간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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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CBS 유대용 기자 ydy213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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