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사용해도 성폭행’…트럼프, 피해자에 맞소송 냈지만 패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및 그와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E. 진 캐럴.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여성을 상대로 맞소송을 걸었으나 기각당했다.

뉴욕 연방지방법원의 루이스 캐플런 판사는 7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션지 엘르의 칼럼니스트 출신인 E. 진 캐럴에게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했다. 캐플런 판사는 성폭력에 대한 캐럴의 진술은 허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990년대 중반에 뉴욕 백화점에서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캐럴이 청구한 소송에서 지난 5월 500만달러(약 65억원)를 지급하라는 평결이 나온 뒤 그가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캐럴은 당시 배심원단이 성추행까지만 인정하고 성기를 사용한 성폭행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시엔엔(CNN)이 질문하자 “그가 성폭행한 게 맞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잘못된 주장은 배심원단 평결 내용과 분명히 어긋난다”며 발언 정정과 배상을 요구했다. 배심원단이 성폭행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캐럴의 발언은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캐플런 판사는 “성적 학대와 성폭행은 모두 중대한 성범죄”라고 밝혔다. 또 뉴욕주 법률이 성폭행을 좁게 정의하는 측면도 있어, 일반인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위를 성폭행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앞서 캐럴이 제기한 소송의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추행에 손가락을 사용한 점만 인정했다. 이 소송도 심리한 바 있는 캐플런 판사는 그런 행위는 사실상 성폭행에 해당한다고도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5월에 나온 배상 판결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캐럴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부르며 성폭력 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주장을 했다가 캐럴한테 추가 소송도 당했다.

캐럴과의 잇따른 소송, 맞소송, 추가 소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안고 있는 ‘사법 우환’의 일각일 뿐이다. 그와 가족이 사업을 하며 사기를 저질렀다며 뉴욕주가 제기한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최근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불법적으로 번복하려 했다며 그를 기소한 것을 비롯해 형사사건 3건도 법원에 계류돼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