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MBC 방문진 이사장 ‘곁가지’로 일단 수사요청부터?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를 둘러싼 정권 차원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방문진에 대한 압박은 감사원 감사와 방송통신위원회의 검사라는 양 갈래로 진행 중입니다.
감사와 검사 결과에 따라 방문진 이사장과 이사들이 해임되면, MBC 사장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방문진에 대한 감사원 감사, 어떻게 진행됐나
감사원 감사의 시작은 국민감사청구였습니다.
지난해 11월 공정언론국민연대 등 우파 성향의 단체들은 MBC가 공영방송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투자 손실을 내거나 적자 경영을 방치했는데도 방문진이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면서 국민감사를 청구했습니다.
감사원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는 지난 3월 "청구 사항이 규정상 요건에 해당하고 감사를 통해 청구 내용의 확인·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MBC의 투자 사업 손실 등 6개 항목에 대해 감사 착수를 결정했습니다.
감사가 결정된 6개 항목은 미국 리조트 개발 사업 손실 등 MBC와 자회사의 투자사업 실패, 손실과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방문진 감사대상 아냐" vs "감사원법상 감사대상"
하지만 방문진에 대한 감사는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습니다. 감사원은 통상 본감사라고 할 수 있는 실지 감사(현장감사) 전에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자료 수집단계에서 감사원이 감사대상인 방문진뿐만 아니라 MBC에 대한 자료까지 요구하면서, 방문진과 MBC가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선 겁니다.
MBC는 주식회사라는 사기업의 성격과 대주주인 방문진이 방통위 소관으로 되어있다는 공적 성격이 혼재된 회사입니다. 따라서 MBC는 감사원의 감사대상이 아니지만, MBC의 최대주주인 방문진은 감사원의 감사대상이 된다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방문진과 MBC는 감사원이 법적 근거 없이 국민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법원에 효력 집행정지 신청과 함께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부패방지법에 근거한 국민감사제도는 '공공기관의 사무가 법령위반 또는 부패행위로 공익을 현저히 해하는 경우'에 실시할 수 있는데, 방문진은 이에 저촉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방문진과 MBC가 낸 집행정지 신청을 지난달 기각했습니다. 나머지 행정소송과 감사의 위헌성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이런 논란에 대해 감사원은 방송문화진흥회가 '감사원법'에 따른 선택적 회계검사 및 직무감찰 대상 기관이기 때문에, 현장조사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감사 아직 진행 중인데...본질 아닌 '곁가지'로 수사요청 먼저?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10일부터 시작된 방문진에 대한 실지 감사. 하지만 감사가 시작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 3일 감사원은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을 불러 대면 조사를 했습니다.
보통의 감사원 감사 절차를 생각하면, 권 이사장 같은 최종 결재권자 혹은 의사결정권자는 가장 마지막에 조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무진의 업무수행이나 정책집행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발견한 뒤 결재 체계를 거꾸로 타고 올라가 문제가 되는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 규명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통상적인 감사 진행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권 이사장에 대한 대면 조사는 이례적으로 실지 감사(현장감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뤄졌습니다.
조사 내용 역시 6가지 감사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감사 방해'와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행위에 대해 집중됐습니다.
감사원이 본질보다는 곁가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피 감사자들이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권태선 이사장 "수사 요청 하기 위한 수순으로 느껴졌다"
권 이사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감사원이 주로 감사방해와 공공기록물법 위반과 관련된 사항에 관해 물었는데 억지로 수사요청을 하기 위한 수순으로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권 이사장은 "방문진은 국민감사 6개 항목과 관련 있는 120여 항목, 300여 개 파일을 제출했고 출석조사도 성심껏 임했다"면서 "감사원은 MBC 자료를, (방문진이) 대신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사방해를 주장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방문진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료까지 MBC로부터 받아서 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한 요구"이며 "감사원도 방문진이 MBC 자료를 대신 받아내서 제출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권 이사장은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와 관련 해선 "처음부터 MBC에서 회수를 전제로 방문진에 나눠준 MBC 자료들을 MBC의 요청에 따라 폐기했을 뿐"이라면서 "회수하기로 한 문서들은 접수한 문서로 인정되지 않고 공공기록물로 보관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감사 담당 국장 "입장 못 밝혀"...대변인실 "방문진의 제출 의무 있어"
이 같은 권 이사장의 주장에 대해 방문진 감사를 맡고 있는 이용출 행정안전감사국장은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감사원 대변인실 관계자는 "감사 내용에 따라 MBC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방문진에 MBC 자료를 대신 요청할 수 있다"며 "방문진이 제출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습니다.
■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도 '수사요청' 먼저...논란 되풀이되나?
감사원이 현장감사가 끝나기도 전에 권 이사장에 대한 대면조사를 서두르는 이유에 대해, 방문진과 MBC는 '정권 차원의 언론 장악' 의도를 감사원이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권태선 이사장은 "이러한 무리수는 어떠한 위법행위를 해서라도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MBC를 장악해보겠다는 몸부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통상 감사원에서 실지 감사를 마친 뒤 감사내용을 정리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내부 결재를 맡아 최종적으로 감사위원회 의결을 받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적어도 수개월이 소요됩니다.
더구나 방문진 이사장 등에 대한 해임 등 '신분상 처분'은 감사원 내에서 법원 역할을 하는 감사위원회 내부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입니다. 만약 통상의 절차에 따라 감사를 진행했다면, 권 이사장을 올해 안에 해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사원의 '수사요청'은 감사위원회에서의 논란을 피해 가면서, 방통위에 권 이사장에 대한 해임 명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방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원은 아직까지 수사요청 등에 관해 결정된 바가 없다며 해당 사안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방문진 이사장 조사는, 앞서 논란이 됐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사례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부터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에 대해 감사를 벌이다, 감사 착수 두 달 만에 감사방해죄 등을 적용해 검찰에 수사 요청했습니다. 감사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감사원이 '먼저' 전 위원장에 대한 수사요청을 한 지 8개월 뒤인 올해 6월에서야 감사결과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이 보고서는 감사위원회에 올라갔지만, 위원회는 전현희 전 위원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불문' 결정을 내렸고, 이조차도 주심인 조은석 감사위원을 '패싱'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박광온 원내대표 등 민주당 국회의원 167명은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불법 정치감사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지난 6월 30일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아직 여당과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국정조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이번에 다시 '표적 감사' 논란이 불거질 경우 민주당 안팎에서 국정조사 요구가 다시 높아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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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wakeu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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