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펑크 상황에서도 나오는 법인세 인하 주장 "시기 부적절"
2023 세법개정안 발표, 일부 언론 "법인세 인하 안했다" 비판
법인세수 감소가 이끈 세수 펑크 국면… 전문가들 "법인세 인하 부적절"
세제 개편 때마다 이어진 법인세 프레임 "아일랜드처럼 낮추자"
다수 언론은 법인세 대신 신혼부부 증여세 '부자 감세' 논란 다뤄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혼인 증여 공제, 영상콘텐츠 세제지원 등을 골자로 한 세법개정안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법인세 인하가 담기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세 수입이 줄어 대규모 '세수 펑크'가 예상되지만 오히려 법인세를 인하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 다음에 세수 확대를 노려야 한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세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상황에서 법인세 인하 주장이 나오는 것이 시기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대폭 줄였던 '2022 세제개편안'과 달리 지난달 27일 발표된 '2023년 세법개정안'에는 추가 법인세 인하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국내로 돌아오는 해외진출기업에 대한 소득세 및 법인세 감면만 있을 뿐이다. 대신, 신혼부부 증여세 비과세 한도가 기존 5000만 원에서 1억5000만 원(1인당)으로 늘고, 영화·드라마 등 'K-콘텐츠' 제작비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현행 3~10%에서 15~30%로 올랐다.
매일경제 “세법개정안, 언 발에 오줌 누기” 비판 나온 이유는
'2023년 세법개정안'을 놓고 경제신문에선 법인세를 더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3%p로 내리는 안을 내놨지만 야당 반대 끝에 법인세 인하 폭이 1%p(25%→24%)에 그쳤기 때문이다.
매일경제는 지난달 28일 사설 <정부 세제개편안 발표, 언 발에 오줌 누기>에서 “한국의 법인세 경쟁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에 불과하고, 상속·증여세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높은 세율이 기업의 투자와 부의 세대 이전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라며 “감세 정책은 감세를 통해 투자와 일자리를 늘려 중장기적인 세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경제도 같은 날 사설 <결혼 증여 확대는 바람직, 기업투자 세제 지원은 미흡>에서 “후한 평가를 주기는 어렵다. 과감하고 근본적인 개편보다 또다시 '찔끔 개선'에 그쳤기 때문이다. 경기 진작을 위한 세제 개편 대상 중 핵심인 법인세율과 상속세율 인하는 쏙 빠졌다”며 “지금처럼 높은 법인세율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어렵다. 73년째 고착화한 징벌적 상속·증여세 틀은 이번에 손도 못 댔다”고 했다.
올해는 대규모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해다. 법인세 인하 주장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31일 나온 기재부의 6월 국세 수입 현황을 보면, 1∼6월 국세 수입은 178조5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조7000억 원(18.2%) 덜 걷혔다. 1~6월 기준, 전년 대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지난해와 같은 경기 상황을 가정해도 올해 세수는 세입 예산 대비 44조 원이 부족하다. 이러한 세수 부족은 전년 대비 급감한 법인세수가 주도하고 있다. 6월까지 법인세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조8000억 원(26.4%) 줄어든 46조7000억 원 걷혔다.
[관련 기사 : '세수 펑크' 예견에도 “건전재정” 정부 입장 반복한 언론]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법인세 인하는) 중립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주장이다. 재정 상황보다는 기업 입장의 내용”이라며 “법인세를 낮추는 대신 이미 상반기 대기업을 중심으로 세액공제를 많이 해줬다. 작년부터 감세를 많이 한 결과 올해 투자가 많이 일어나고 고용이 많이 창출됐나. 그렇지 않다. 당장의 세수는 세율을 올려야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법인세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세수가 이렇게 부족한데 꼭 지금 내려야 하냐는 말이 나올 것”이라며 “올해 삼성전자 매출이 그렇게 좋지 못하고, 세계 반도체 수요가 많지 않다. 법인세를 인하하더라도 세수 증대 효과가 크지 않은데 굳이 지금 내릴 필요성은 없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국내 법인세 부담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GDP 대비로는 많이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실효세율 차원에서 보면 다르다”고 말했다. OECD 데이터를 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38개 회원국 중 9번째로 높지만 실효세율을 비교하면 순위가 달라진다. 실제 OECD 회원국 중 24개국은 단일세율을 채택해 모든 법인에 똑같은 세율을 적용하지만 우리나라는 과세표준 액수에 따라 법인세율을 10%, 20%, 22%, 25%로 차등화한 4단계 세율 체계를 채용하고 있다.
“아일랜드 법인세 낮추고 세수 늘었다” 보도에 “한국 비교 부적절”
법인세를 둘러싼 언론의 지형은 '인하'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법인세 인하 효과에 대한 학계 의견은 분분하지만 언론 공론장에선 그렇지 않다. 가령, 지난해 예산안 처리 국면(2022년 12월1일~12월20일)에서 주요 12개 매체 사설 35개 중 30개가 법인세 인하를 주장했다. 법인세수 감면이 주도하는 2023년 '세수 펑크'에서도 법인세 인하 프레임은 계속됐다.
[관련 기사 : 학계 의견은 분분한데 한쪽으로 쏠린 언론의 법인세 인하 주장]
한국경제는 지난달 6일 <법인세율 '유럽 최저' 아일랜드, 세수 확 늘었다> 기사에서 법인세 인하가 세수 확대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는 “아일랜드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재정 지출을 64억유로(약 9조 원)가량 늘리기로 했다”며 “다국적 기업 유치를 위해 법인세 세율을 유럽 최저 수준으로 낮춘 것이 법인세 세수 증가 및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라고 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지금 시점에서 아일랜드 이야기를 꺼내는 건 부적절하다. 아일랜드는 거의 '조세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세금을 아주 낮춰서 다국적기업을 유치하는 건데, 아일랜드는 기본적으로 영어가 되고 EU 가입국이기 때문에 무관세 등 혜택이 있어 미국 테크기업들이 본사를 위치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과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는 지난해 8월에도 <'법인세 싼 나라' 아일랜드 1분기 성장률, 유로존 10배> 기사를 냈다. 정세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고 나서 아일랜드의 정책이 테크 기업들의 탈세 수단이 되었다는 비판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며 “'글로벌 최저한세', '구글세', '디지털세' 등을 철퇴 수준으로 도입되고 있는 마당인데, 중요한 맥락들이 빠졌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하 효과에 대해선 학계 해석이 분분하다. 경제성장에 영향을 줬다는 연구와 주지 않았다는 연구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미디어오늘에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 아직도 많은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며 “2022년 8월에 나온 유럽경제리뷰를 보면 (법인세 인하) 효과가 있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진실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말했다.
타 언론, 법인세 대신 부자감세 비판 전문가들 “세수펑크 심각”
다수 언론은 세수 부족 상황에서 계속되는 정부의 감세 기조를 지적할 뿐, 쟁점으로 법인세를 다루지 않았다. 신혼부부 증여세 비과세 한도를 양가 합쳐 3억 원 늘린 것을 놓고 '부자 감세'라는 비판도 나왔다.
지난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세청 제출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부모로부터 비용을 지원 받아 증여세를 낸 신혼부부는 최소 상위 14%에 해당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비과세 한도 확대의 수혜자 역시 서민보다는 상위층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경향신문은 <세수펑크 아랑곳없이 '부모찬스' 증여세를 줄이겠다니> 사설에서 “결혼자금으로 1억5000만원을 자녀에게 선뜻 제공할 수 있는 계층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비혼 청년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니 형평성 논란도 뒤따를 것”이라고 했고, 한겨레는 <건전재정 한다며 또 감세, 세수 기반 허무는 정부> 사설에서 “정부는 감세 혜택이 대부분 서민·중산층에 돌아갈 거라고 주장하지만, 근로소득자의 35%가 세금을 안 내는 면세자여서 감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세수 펑크'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반기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세수 부족 규모는 '40조'라는 예상치를 웃돌게 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엄청 심각하다. 지금 한국은행에서 계속 돈을 꿔오고 있다. 거기에다 세계잉여금도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세수 펑크가 심각할 것”이라며 “지금 나오는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봤을 때 하반기 경제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하반기 큰 위험 중 하나는 세수 결손 비판이 많아지다 보니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이리란 예상이다. 필수적인 인프라 투자 등 재량적인 재정 지출을 줄일 것”이라며 “정부가 주장하는 성장에도 인프라 투자는 중요하다. 4차산업혁명, 기후 전환에 필요한 돈을 못 쓸 수 있다. 실물 성장도 별로 안 좋고 분배도 안 좋아진 상황에 재정도 못 쓰니 금융·가계부채 불안정성 등 위험 요소를 더 많이 만드는 기조로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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