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원치 않아도 ‘스토커 처벌’ … 가족 치료까지 국가가 나선다[10문10답]
개인정보 유포, 스토킹 포함
피해자 해고 등 불이익 금지
지속적 연락 등 괴롭힘 넘어
살인 등 강력범죄 동반 많아
112신고 즉시 현장응급조치
스마트 워치·접근 금지 지원
처벌 강화 됐지만 법안 ‘허점’
미성년자 피해 가중처벌 없고
피해자 보호명령제 빠져 한계
스토킹 범죄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방지법)이 각각 지난 7월 11·18일부터 시행됐다. 개정 법률은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고, 온라인 스토킹 처벌 규정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법상 잠정 조치인 접근금지 이행 명령에 가해자에 대한 위치 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도입하기로 했다. 스토킹 범죄가 감금·납치 등 강력 범죄를 동반하고, 살인 등 흉악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이번 법률 개정의 배경이 됐다. 개정 법률의 구체적인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알아본다.
1. 스토킹 방지법이란
스토킹 방지법은 스토킹을 예방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 스토킹 방지법에 따르면 국가 등은 스토킹 예방·방지를 위해 신고 체계를 구축하고 조사 및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또 피해자에 대한 △법률구조·주거 지원 △취업·자립 지원 서비스 △상담·치료 회복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피해자의 가족에 대해서도 보호 서비스가 지원되며 스토킹 행위로 인해 피해자 가족 구성원이 주소지 외의 지역에서 취학해야 할 경우에 국가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피해자나 스토킹 사실을 신고한 사람에 대한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도 금지된다. 고용주는 이들에 대한 해고 및 부당한 인사 조치 등을 취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할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2. 스토킹 처벌법 위반 시에는
스토킹 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주거지·직장 등을 따라다니며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유발하는 행위 등을 스토킹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 법률은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폐지와 보호 대상 확대를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음성·문자·사진·영상 메시지를 전송하는 행위 일체를 스토킹 범죄로 분류한다. 또 상대방의 개인정보·위치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배포·게시하거나, 신분 관련 정보를 도용해 그를 사칭하는 행위도 스토킹으로 명문화됐다. 아울러 법원 판결 전에 스토킹 가해자에게 전자발찌 부착 등의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이를 임의로 분리·훼손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개정 법률은 ‘긴급응급조치’(스토킹 행위가 반복될 우려가 있을 경우에 행해지는 조치) 보호 대상도 가족·동거인으로 확대했다.
3. 스토킹 신고하면 어떤 보호 받을 수 있나
시행된 법률에 따라 스토킹 피해자가 112에 신고하면 ‘여성긴급전화 1366’으로 연결돼 피해 초기부터 보호 서비스 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다. 스토킹 피해자가 임시 숙소와 임대주택에서 개별 주거할 수 있도록 주거 지원을 하는 시범사업도 지난 5월 시작됐다.
스토킹 신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는 응급조치,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로 분류된다. 스토킹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은 즉시 현장에 나가 응급조치를 하고, 수사가 진행되면 피해자는 신변 보호 요청을 할 수 있다. 신변 보호가 결정되면 △가해자 경고 △‘스마트 워치’ 지급 △112 시스템 등록 △맞춤형 순찰 등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또 스토킹이 반복될 우려가 있을 경우 경찰은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의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검찰 역시 법원에 긴급응급조치와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구금 등의 ‘잠정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4. 스토킹 범죄 가해자는 어떤 사람
지난해 스토킹 범죄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가해자는 1만37명으로, 이 중 20대가 5명 중 1명꼴로 가장 많았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스토킹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경찰에 붙잡힌 스토킹 피의자 중 20대는 2161명(21.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 21.2%, 30대 20.9%, 50대 19.6%, 60대 9.3% 등의 순이었다. 19살 미만의 소년범도 162명(1.6%) 있었다. 성별로는 남성이 전체의 81.3%를 차지했다. 피해자는 여성이 전체의 85.3%였다. 피해자 연령대는 20대가 25.8%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전국 18개 여성긴급전화 1366 센터에는 전년 대비 149.7% 증가한 6766건의 스토킹 피해 상담이 접수됐다. 스토킹 피해 상담을 가해자 유형별로 보면, 과거 또는 현재의 연인·배우자나 직장 동료 등 ‘아는 사람’이 90.0%를 차지했다. ‘아는 사람’ 중에서도 과거 연인이 가해자인 상담이 42.3%로 가장 많았다. 또 온·오프라인 공간 모두에서 스토킹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한 상담은 54.1%였으며 오프라인 스토킹 피해 상담은 25.9%, 온라인 스토킹 피해 상담은 20.0%를 차지했다.
5. 왜 스토킹 범죄가 문제인가
스토킹 범죄는 단순히 연락 강요나 주거 침입에 그치지 않고 성폭행이나 살인 등 강력 범죄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약 3년간 스토킹 범죄 가운데 31건은 스토킹 이후 살인·감금·강간 등 강력 범죄로 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살인사건의 범인 전주환도 입사 동기 여성을 집요하게 스토킹한 끝에 살해했다. 스토킹 피해자의 신고에 앙심을 품고 보복하는 범죄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헤어진 연인의 집요한 스토킹을 참지 못해 상대방을 고소한 30대 여성은 상대방이 100m 접근 및 통신 금지 등 잠정조치 처분을 받고도 결국 살해당했다. 2021년엔 자신을 신고한 전 연인을 스토킹한 끝에 집을 찾아가 그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동생에게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가족을 대상으로 한 보복 범죄도 적지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스토킹 사건 발생 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확실하게 분리하는 방안은 물론 그 가족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6. 스토킹 범죄 처벌 및 보호 강화책 계기가 된 사건
지난해 9월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살인범 전주환은 지난해 9월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내 여자 화장실에서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인 여성 직원 A 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전주환은 앞서 2021년 10월 A 씨에게 불법 촬영물을 전송하고 협박 메시지를 보내는 등 351회에 걸쳐 스토킹을 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법원의 중형 선고가 예상되자 선고 하루 전날 ‘보복 범죄’를 저질렀다. 전주환은 지난 7월 11일 2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대단히 잔인하고 포악하며 피해자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끔찍한 육체적 고통 속 생을 마감했다”고 판시했다.
7. 스토킹 처벌법 적용 대상
이번에 시행된 스토킹 처벌법은 개정 전 법률과 마찬가지로 피해자 또는 그 동거인이나 가족에게 △접근하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지나 직장 등을 찾아와 지켜보는 행위 △우편·전화 등을 통해 연락하는 행위 △피해자 등에게 특정 물건을 전달하거나 거주지 인근 물건을 훼손하는 행위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빚을 독촉하거나 층간 소음에 따른 갈등으로 계속 접근하고 연락을 취하는 행위 또한 스토킹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개정 법률은 또 상대방에게 해악을 끼칠 목적으로 특정인과 그 가족의 개인정보를 인터넷상에 공개하는 것 또한 스토킹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스토킹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무법인 리연의 장서연 대표 변호사는 “아프리카TV 등에서 일부 시청자들이 BJ들의 집주소나 전화번호를 대중에게 공개해 BJ와 가족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개정 법률은 이런 행동도 스토킹으로 보겠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일각에선 스토킹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조항이 남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8. 스토킹 범죄 주요 판례
스토킹 범죄 인정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데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행위’를 범죄의 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지난 6월 서울북부지법 이석재 판사는 교제하다 결별한 여자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 찾아가고, 한 달 뒤에는 집에 일방적으로 찾아가 현관문을 두드려 스토킹 범죄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스토킹 범죄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하는 행위”라며 “일회성 내지 비연속적인 단발성 행위가 수차 이뤄진 경우 스토킹 처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신체적 위협이 없어도 지속·반복된 행위에 대해서는 스토킹 범죄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5월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수십 차례 메신저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29차례 건 피고인에 대해 스토킹 처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전화 벨소리나 휴대전화에 뜨는 ‘부재중 전화’ 문구 등도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9. 한계점 지적되는 부분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법조계 등에서는 여전히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법률이 인정하는 스토킹의 범위가 아직은 협소하다는 지적이 많다. 개정 법률은 스토킹 범죄가 ‘정당한 이유 없이’ 행해져야 인정받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약 가족이나 친족 간 스토킹이 발생하는 경우 사실상 보호가 어려울 수도 있다. 피해자 보호 명령 제도가 포함되지 않은 점도 한계점이다. 이 제도는 판사가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시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의 청구에 따른 결정으로 스토킹 행위자에게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미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는 데다가 법원의 업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로 법안에서 해당 내용은 빠지게 됐다.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을 가중처벌하거나, 반려동물에 대한 위해의 경우 스토킹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고려됐으나 이 또한 포함되지 않았다.
10. 스토킹 처벌 및 예방 다른 선진국은 어떻게 하나
미국은 이미 30년 전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마련해 왔다. 미국은 1994년 제정된 ‘여성폭력방지법’을 통해 연인 간 폭력뿐 아니라 가정폭력·성폭력·스토킹 등을 여성 폭력으로 규정하고, 피해자 구제 제도를 강화해왔다. 미국 50개 주에선 파트너 폭력에 대해 의무체포 제도를 택하고 있다. 의무체포란 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를 정확히 식별해 반드시 체포하도록 하는 제도로, 피해자에게 가해자 체포나 처벌을 원하는지 질문하면 안 된다. 영국은 피해자의 요청이 없어도 경찰이 스토킹 혐의점이 있고 추가 피해 우려가 있어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최소 2년 이상의 ‘보호명령’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가해자의 스토킹 혐의가 입증돼 법원으로부터 정식 보호명령이 인용되기 전이라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임시 보호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이다. 임시 혹은 정식 보호명령을 위반하면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김규태·김무연·이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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