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밀하면서 격식없는 ‘캠프 데이비드’… 韓美日 ‘초밀착 외교’ 펼친다[Global Window]
3개국 정상회의 D-10 … 회의 장소의 정치학
미국 대통령 전용 5000㎡ 휴양지
바이든, 해외정상 초청은 처음
“다른 장소보다 더 큰 결실 기대”
15년전엔 MB·부시 골프카트 타
윤 대통령, 바이든과 반도체 공장 방문
기시다, 윤 대통령에 오므라이스 대접
회담장소, 상대 예우 수단되기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의를 갖는다. 이번 회의가 국제 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회의가 아닌 별도의 3자 회의를 위해 마련됐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관심이 크지만 그 장소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마다 세계 지도자들이 만나 합의를 도출한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실리는 모양새다. 이처럼 회의 장소는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현실 정치에서 무언의 메시지로 작용한다. 회의 장소 선정을 놓고 치열한 물밑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격식 깨고 대화하는 캠프 데이비드, 역사적 성과 도출 무대 = 캠프 데이비드는 미 대통령 전용 휴양지로, 일반인 관람이 허용된 백악관보다 훨씬 긴밀하면서도 사적인 만남이 가능한 곳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곳에 해외 정상을 초청하는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은 5000㎡(약 1500평) 규모로 백악관에서 헬기로 30분 정도 걸리며 일반인 접근이 통제된다. 한국 정상이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하는 것은 15년 만으로 2008년 4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초청으로 처음 찾았다.
캠프 데이비드는 ‘the Spirit of Camp David’(캠프 데이비드 정신)라는 용어로도 유명하다. 1959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초청해 미·소 관계 개선과 세계 평화를 논의하면서 이 용어가 탄생했다. 앞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곳에서 1943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 작전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캠프 데이비드는 백악관과 달리 각국 정상들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눈다. 사전에 시나리오가 짜인 채 철저한 의전 중심으로 돌아가는 백악관 회담보다 더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2008년 이곳을 방문했던 이 전 대통령은 당시 부시 대통령과 골프 카트를 타다가 자신이 운전해 보겠다고 해 휠을 잡은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 장소로 캠프 데이비드가 선정된 것을 놓고 구체적인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정계에 정통한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캠프 데이비드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실무진들은 사전에 더욱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며 “백악관 회담보다 더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근대와 함께 시작된 회담 장소의 상징성…장소 선정 놓고 치열한 경쟁 = 국제 무대에서 ‘회담 장소’가 본격적인 키워드로 등장한 건 ‘종교 전쟁’으로 불렸던 30년 전쟁(1618∼1648년)을 끝맺은 베스트팔렌 조약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신교 측 대표였던 프랑스와 스웨덴, 구교 측의 신성로마제국(합스부르크제국)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각자 세력권에 있는 도시에서 조약을 맺길 원했다. 양측의 중재 결과 조약이 맺어진 곳이 중립지대였던 독일 베스트팔렌주의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시였다. 이처럼 회담 장소는 각국의 이해관계 및 실리가 물밑에서 사전에 철저히 조율된 결과물이라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열린 핵심 회의 중 하나인 얄타회담도 마찬가지다. 흑해 연안 크름반도에 있는 얄타에서 1945년 2월 열린 이 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관리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미·영·소 간 정상회담이었다. 당시 루스벨트 미 대통령과 처칠 영국 총리는 회담 장소로 키프로스나 시칠리아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은 건강을 핑계로 모스크바에서 가까운 흑해 연안의 얄타를 고집했다. 건강이 우려되는 건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총리도 마찬가지였지만, 결국 스탈린 서기장의 제안을 수용했다. 미국과 영국엔 소련이 독일 동부전선 공략을 강화하고,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에도 참전해 줘야 하는 이른바 ‘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령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수천㎞를 이동해 얄타회담을 가진 후 2개월 뒤 사망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세기의 회담’으로 불렸던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도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장소였다. 싱가포르에 미국과 북한 대사관이 있는 데다 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정상 간 친밀감 보여주는 매개되기도 = 회담 장소는 상대국 정상을 예우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5월 한국 방문 첫 일정으로 윤 대통령과 함께 방문한 곳은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이었다. 미 대통령이 특정 대기업의 공장을 첫 방문지로 선택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시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전자 공장 방문은 경제안보 분야에 있어 양국의 협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보로 분석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기시다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도쿄(東京)의 한 스키야키(鋤燒) 식당에서 친교만찬을 갖고, 이후 도쿄 번화가 긴자(銀座)에 있는 경양식 식당 ‘렌가테이(煉瓦亭)’에서 오므라이스로 2차 만찬을 진행했다. 일본 언론은 2차 만찬에 대해 윤 대통령의 취향을 반영한 메뉴라며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일본 측에서 마련한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환대)’라고 보도했다. 오모테나시는 외부 손님이 오면 극진한 대접을 하며 환영하는 일본 문화로, 정부의 외교 정책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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