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아'가 쓴 시 챗GPT로 다듬어 공연…"예술의 영토 확장"

강애란 2023. 8. 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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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 '파포스 2.0' 연출한 김제민 서울예대 교수 인터뷰
"사진·영화 등장 때처럼 새로운 기술에 맞는 예술 형식 나올 것"
김제민 서울예대 교수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시극 '파포스 2.0'을 연출한 김제민 서울예대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가 끝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8.8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시 쓰는 인공지능(AI) '시아'가 지은 시를 챗GPT로 다듬어 대본을 완성했다.

오는 10∼1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코트(KOTE)에서 공연하는 시극 '파포스 2.0'의 작업 과정이다. 이 작품은 김제민(44) 서울예대 공연학부 교수가 지난해 8월 선보인 '파포스'에 이어 내놓은 후속작이다.

일종의 희극인 시극은 대본이 서사를 가진 인물들의 대사가 아닌 시로 이뤄진 공연이다. '파포스 2.0'에서는 시아가 쓴 시를 배우, 무용수,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 시를 말, 몸짓, 음악 등으로 표현한다.

대본을 집필한 시아는 1만3천여 편의 시를 학습해 시 쓰는 법을 익힌 AI다. 김교수와 AI 연구가인 김근형으로 구성된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가 카카오 계열사인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언어 모델 '코GPT(KoGPT)'를 기반으로 2021년 개발했다.

지난 7일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교수는 언어의 문법을 벗어나는 시의 특성과 오류를 만들지 않도록 설계된 AI의 특징이 통할 것 같다는 호기심에서 시아와 관련된 작업이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언어에는 결합, 계열 등의 규칙이 있는데, 그 규칙을 벗어났을 때 시적 표현이 나온다.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오류의 경계에서 시가 써지는 것"이라며 "또 시는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완성되는 측면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열려있는 장르이기에 AI로 접근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파포스'에서 '파포스 2.0'으로 넘어가는 1년 사이 작업 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말 챗GPT가 나오면서 예술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었다. 시아도 새로운 시 2천 편을 더 학습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공연에서는 시아가 쓴 시를 가급적 건드리지 않고, 연출적으로 의미를 불어넣는 작업을 하려고 했다"며 "이후 1년간 AI와 예술·창작 사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번에는 시아를 공동 창작자로 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아가 쓴 시가 워낙 인간이 쓴 것 같아서, 이걸 시아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며 "챗GPT를 이용해 시아가 쓴 문장의 주체나 화자를 AI가 되도록 했다. 예를 들어 '많은 것을 보고 느꼈어'라는 문장은 '많은 것을 학습했어'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마치 사람이 쓴 것 같은 시아의 시에 의도적으로 'AI표'라는 꼬리표를 단 것이다. 챗GPT의 역할은 시아의 시에 'AI' 색깔을 입히는 것이었다.

시극 '파포스 2.0' 포스터 [리멘워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관객들이 시아가 쓴 시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연출적 장치도 마련했다.

김 교수는 "시아는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로 목소리 출연을 하고, 가면 등을 활용해 무대 위에서 표현도 한다"며 "또 관객이 시제를 던지면 시아가 즉흥적으로 시를 생성하거나, 시아가 쓴 시를 관객이 낭독하는 '관객 참여형' 장면도 많다"고 귀띔했다.

김 교수는 이번 공연처럼 예술 영역에서 AI를 활용은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누구나 손쉽게 AI로 안무를 만들거나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술들이 나와 있고, 이를 이용한 예술적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에 AI를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갖는 의미는 뭘까. 김 교수는 "예술의 영토 확장"이라고 답했다.

그는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사진을 회화 작품처럼 찍었고, 영화가 나온 초창기에는 연극을 주로 찍었다"며 "기술이 진화하면 처음에는 올드미디어가 했던 방식들을 따라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기술에 맞는 예술형식이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AI 역시 지금은 인간을 흉내 내는 창작방식이라면 앞으로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며 "영화의 클로즈업 기법은 과거에는 낯선 것이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소비되는 것처럼, AI 역시 우리가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기발한 예술 형식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AI를 이용한 작품이 '얼마나 창의적인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보다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지각 경험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를 이용한 작업을 할 때마다 돌아오는 건 부메랑 같은 질문이에요. AI가 시를 쓰면 '시란 무엇인가', AI가 춤을 만들면 '춤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죠. 그 답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인간이에요. 이번 공연은 시아가 시를 쓰는 이유를 찾아 극장을 찾는 이야기로 시작돼요. 어떤 답을 찾는지는 관객의 몫이죠."

김제민 서울예대 교수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시극 '파포스 2.0'을 연출한 김제민 서울예대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가 끝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8.8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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