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터진 은행 횡령사고…'책무구조도' 있었다면…

노명현 2023. 8. 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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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눈에 불 켰는데도'…경남은행 '구멍'
"책무 명시돼 있었다면 최고위층 징계감"
금융지배구조법 개정 필요하지만 '아직'
신한금융 등은 자체적으로 도입 속도

은행권 횡령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 횡령사고 이후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의 내부통제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도·감독을 강화했지만 역대급 규모의 사고가 또 터진 것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책무구조도' 작성 등을 골자로 한 예방 중심의 금융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규모가 큰 은행과 금융지주부터 개선된 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시행까지는 관련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금융사들은 태스크포스(TF)에 직접 참여했던 만큼 법 개정 이후 책무구조도 도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고로 인해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 논의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예경탁 BNK경남은행 은행장이 지난 3일 경남 창원 본점에서 직원의 562억 원대 횡령사고와 관련 공식 사과하고 있다./사진=경남은행 제공

결국 내부통제 미흡…징계는 누구까지?

금융감독원은 지난 2일 BNK경남은행에서는 562억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의 약 700억원 횡령 사건 후 1년여 만에 벌어진 대형 횡령 사건이다.

금감원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지난 2007년부터 올 4월까지 부동산 PF 업무를 담당한 간부급 직원이 횡령·유용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금감원은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 사고 후 전 은행에 자금관리체계 등 자체 점검을 요청했다. 그런데도 경남은행은 7년 이상 진행된 직원의 횡령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에 금감원은 이번 금융사고와 관련해 내부통제 실패에 책임이 있는 관련 임직원에 대해 단호하고 엄정하게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관련기사: 금감원, 경남은행 562억원 횡령사고에 "PF 전수조사"(8월2일)

BNK금융지주는 지난 4일 빈대인 지주 회장 주재로 긴급 그룹 전 계열사 경영진 회의를 열고 근본적인 쇄신책 마련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사고발생 후 강력한 처벌 등을 강화하는 대신 금융사 스스로 자율성과 책임성 있는 내부통제를 유지토록 하는 등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춘 논의 결과물이다.

방안 핵심은 책무구조도를 도입해 임원들의 책임을 명확히 한다는 내용이다. 책무구조도란 각 임원에 책임지는 내부통제 항목을 기재해두는 것을 말한다. 책무구조도를 통해 사고 발생과 관련한 내부통제 책임이 있는 임원을 특정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징계나 처벌이 가능하다. 현재 금융권에서도 이번 사고에 대한 처벌 범위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책무구조도 도입, 언제부터

금융위원회는 제도개선 방안 발표 이후로 금융사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내용을 구체화한 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법 개정 후 1년 이내 은행과 지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관련기사:'책임자' 없었던 금융사고, 책임자 찾는다(6월22일)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이 책무구조도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분위기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달 내부통제 책무구조도를 법령 통과 후 조기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신한금융 측은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업무 진행과정에 엄격해져 영업력이 저하될 우려도 있지만 고객을 두텁게 보호해 신뢰를 얻으면 장기적으로 회사 이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관건은 법 개정 시점이다. 이번 사고에 대해서도 금융권 일각에선 책무구조도 도입 등 내부통제 관련 제도 개선이 선제적으로 도입됐다면 경영진 처벌도 가능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작년과 올해 발생한 횡령 사고는 특정 업무(IB·부동산PF 등)에 장기 근속한 직원에서 출발했다"며 "책무구조도를 통해 각 부서별로 업무와 해당 임원들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면 이들을 적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책무구조도 도입 전이라 임직원의 책임 소재 범위를 명확히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한 은행 관계자는 "이번에도 거액의 횡령이 7년여에 걸쳐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은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책무구조도가 있었다면 해당 임원뿐 아니라 최고위 경영진까지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현재 금융사들과 논의하면서 관련 규정과 조문 작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를 통한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고 내년 총선도 앞두고 있어 정확한 도입 시점을 거론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번 사고 등을 계기로 되도록 도입을 앞당길 동력은 생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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