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진정으로 가고자 하는 그 곳에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2023. 8. 8. 07: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3월 대전시는 이종수미술관 건립을 발표했다.

미술관 건립이란 많은 연구와 인력, 자원이 소요되는 그야말로 지난한 프로젝트겠지만 이를 시작으로 풍요로워질 대전미술 화단이 사뭇 기대된다.

교동 섬의 망원경으로 보이는 그의 고향, 배로 20여 분 거리의 닿지 못하는 그 곳에 대한 그리움은 운산산수(雲山山水)가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운산의 작업은 의례 추상과 구상,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귀결되는 한편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리고 갈망해온 유토피아이자 자화상이 아닐까.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지난 3월 대전시는 이종수미술관 건립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미술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지역 대표 원로 예술인의 예술의 혼과 작업세계를 조명,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육성한다는 취지다. 미술관 건립이란 많은 연구와 인력, 자원이 소요되는 그야말로 지난한 프로젝트겠지만 이를 시작으로 풍요로워질 대전미술 화단이 사뭇 기대된다.

대전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자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전통산수화의 맥을 잇는 조평휘의 화업은 1970년대 후반 대전에 정착한 이후, 전통에 바탕을 둔 현대성의 재창조에 대한 지속적인 모색으로 '운산산수(雲山山水)'를 정립, 현대 한국화가 새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교육자로서는 물론 대전지역 전통산수화의 계보로 이어져 한국미술의 융성에 기여하며 대전 한국화의 큰 산으로 남았다.

삼팔선 근처에 위치한 마을'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느 날 아침 박격포와 총소리에 놀라 문도 닫지 못한 채 새까만 연기로 가득한 마을을 뒤로 하고 국군을 따라 남하했다. '곧 집으로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교동 섬의 망원경으로 보이는 그의 고향, 배로 20여 분 거리의 닿지 못하는 그 곳에 대한 그리움은 운산산수(雲山山水)가 됐다.

운산산수의 가장 큰 특징은 호방한 필치와 독자적인 조형성이다. 전통 산수 특유의 '여백의 미'를 과감히 삭제하는 대신 강한 농묵과 역동적인 필치로 화면을 채운다. 능선을 펼치는 원경 대신 높은 하늘 위에서, 정말 구름을 타고 내려 보기라도 한 듯이, 부감법으로 장엄하게 조국의 산수를 그려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운산의 작업은 의례 추상과 구상,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귀결되는 한편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리고 갈망해온 유토피아이자 자화상이 아닐까.

2016년 이후부터는 이전과는 다르게 보다 세심하고 소박한 화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곧 반세기가 넘도록 그리워했던 이상향의 건설이다. 돌아가고 싶은 그곳, 기억 속의 고향, 상상으로 그려낸 그곳의 모습이 한 화면에 담겨 있다. 운산의 작품에는 종종 절벽 위에 작은 집들이 등장한다. 결코 그런 곳에 집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마치 문 밖에서부터 풍겨오는 밥 냄새와 일과를 끝 낸 가족들의 소리가 들리는 저녁 즈음의 그것처럼 조평휘의 작은 집들은 따뜻한 불까지 켠 채로 거기에 있다.

조평휘의 작업세계는 일찍이 수많은 전시와 연구를 통해 다루어졌다. 특히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대규모 회고전에서 현대 한국화 지형에서 그 입지를 공고히 한 바 있다. 그러나 구름 타고 산을 넘어, 조평휘는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운산(雲山) 과 그의 세계를 다룬다. 친구이자 스승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이며, 격동의 시대를 살아 온 예술가로서 그의 삶에 집중한다. 수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작업실에 가고, 작업실 앞 작은 백반가게 늘 식사를 한다. 작업에 대한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큰 산에 구름이 있지, 야산에 구름이 머무르겠냐"며 구름을 품는 큰 산이 되고자 했던 운산의 정신은 어떤 시련에도 굳건했던 그의 삶처럼 한국현대미술계에 남을 것이다.

아흔 해가 훌쩍 넘도록 구름과 산을 그리며 그가 화면 너머로 본 것은 무엇일까. 부디 그의 구름이 산을 넘어 그곳에 도달하기를.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