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베트남의 의미는[가깝고도 먼 아세안](16)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의 일정으로 레 화이 쭝(Le Hoai Trung) 베트남 공산당 대외관계 중앙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을 만났다. 또한 블링컨 장관과 더불어 미국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제이크 설리반 국가안보보좌관과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국방부 정책담당 부장관과 국방부 정책보좌관 그리고 대외원조를 총괄하는 미국국제개발처장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만났다. 여기에 더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인 브루킹연구소에서 전·현직 의원과 공무원, 학자 등 다양한 인사를 만나 미국-베트남 관계 개선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미국의 외교, 국방, 안보라인에 대외원조 책임자까지 총출동해 베트남 공산당의 외교위원장을 파격적으로 최상의 예우로 맞이했다. 미국이 베트남을 향해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3년은 ‘미군의 베트남 철수 50주년’이자 ‘미국과 베트남이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미국으로서는 상징적인 기념일을 명분으로 베트남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고 싶어한다. 따라서 이번 만남에서 외교 관계 격상을 조건으로 경제적·군사적 선물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서맨사 파워 미국국제개발처장이 베트남을 방문해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과 재생에너지 사업, 염수화와 침식이 심각한 메콩강 삼각지에 대한 각종 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미국은 이번에 이를 재확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악관의 외교안보 총괄인 설리반 보좌관과 외교, 국방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해 베트남 동해(남중국해)에서 베트남이 중국에 밀리지 않도록 각종 군사적 지원에 대해 이야기했으리라 추측된다. 미국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1척당 우리 돈으로 5000억원이 넘는 해안경비정을 무상 제공했다. 올해 중으로 세 번째 경비정을 제공할 예정이다.
미국은 왜 베트남에 집착할까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오랜 갈등 관계인 데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중국을 견제할 아세안의 ‘대항마’로 가장 적합한 국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이 아세안 대륙 국가 중심으로 인프라에 투자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펼친 결과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이 급격히 ‘친중’으로 돌아섰다. 또한 이들 국가 내부적으로 총선 결과에 불만을 품은 군부의 쿠데타(2014년 태국·2021년 미얀마)와 정권의 야당 탄압(2014년 캄보디아)은 서방 세계의 제재를 피해 친중으로 돌아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미국의 절대 우방이자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요충지인 필리핀이 두테르테 대통령 시절 ‘탈미친중’으로 돌아선 것은 미국에 큰 충격이었다. 이처럼 대륙부 아세안 전체가 친중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미국을 베트남에 더욱 매달리게 만들었다. 미국은 베트남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군사동맹을 맺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내 편이 될 수 없다면 최소한 적(친중)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차선의 목표’라는 자세로 베트남에 공을 들이고 있다.
베트남으로선, 미국과 외교·군사적으로 급격히 가까워지면 중국의 군사적·경제적 보복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조심스럽다. 중국은 베트남의 2위 수출국이지만, 1위 수입국이기도 하다. 수출 덕분에 빠른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이나 중간 부자재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수입해 오고 있다. 글로벌 생산 공장들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겨오고 있으나, 핵심 설비는 여전히 중국에 남아 있다. 중국이 무역 보복에 나서면 베트남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제안을 섣불리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언제든 도발을 감행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베트남 입장에서는 미군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베트남 국경에서 고작 30㎞ 떨어진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해군기지를 중국이 차지하면서 베트남을 향한 중국의 군사적 압박은 더욱 심해진 상태다.
이 때문인지 지난 6월 25일부터 30일까지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다낭에 입항했다. 2018년 3월 칼빈슨호, 2020년 3월 시어도어 루스벨트호에 이은 3번째 미 항공모함의 입항이었다. 미 항공모함이 입항하기 닷새 전인 6월 20~23일에는 항공모함으로 개조 예정인 일본 자위대의 이즈모호와 미사일 구축함 사미다레호가 베트남 중남부 깜라인항에 입항했다. 다낭은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호앙사군도(중국명 시사군도)를, 깜라인은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섬 쯔엉사군도(중국명 난샤군도)를 눈앞에 두고 있다. 중국이 베트남 영토를 침범하면 미국, 일본 연합군과 함께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바이든의 치적이 돼야 하는 베트남 7월 29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메인주 프리포트에서 열린 2024년 대선 캠페인 연설에서 ‘9월에 열릴 뉴델리 G20 정상회에서 베트남 지도자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베트남이 미국을 러시아, 중국과 같은 주요한 파트너로 여긴다’라고까지 덧붙였다. 바이든이 내년 재선을 앞두고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 대단한 외교 성과인 양 자신의 지지자들 앞에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교 전문가로 알려진 바이든이 오바마 대통령 시절 큰 외교 성과이자 트럼프가 망가뜨린 이란과의 관계, 쿠바 평화협정을 복원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진전된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중동의 오랜 맹방인 사우디와는 관계가 틀어지고, 사우디와 이란 관계는 중국이 적극 개입해 복원시키며 중동의 평화를 불러왔다. 이렇게 그간 외교 정책에서 체면을 구긴 바이든이 베트남과의 외교 관계 격상을 외교 치적으로 내세우며 대선에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 인도 델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베트남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외교 관계를 격상하게 될까. 베트남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친미도, 친중도 아닌 베트남 자국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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