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판 포비아]上 순살 아파트와의 잘못된 만남
철근 누락에 설계·감리·시공 총체 부실 '닮은꼴'
"공법 문제없다"지만…부실 시공땐 대형 사고 우려
"무량판 구조는 보가 없기 때문에 기둥과 슬래브 연결부위(주배근)에 철근이 매우 촘촘히 들어가야 힘을 받쳐준다. 그러나 붕괴 현장을 다녀온 건축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연결 지점의 철근이 조밀하게 배치돼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한겨레, 1995년 7월 7일 '검·경 수사서 드러난 붕괴원인 백화점 붕괴참사')
경찰에 출두한 시설부 차장 A씨는 "건물 도면을 확인한 결과 5층 기둥 내부의 철근 수는 8개로 4층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고 진술했다. (...) 무량판 구조 공법에 따른 공사를 하면서 시공사 측이 기둥과 슬래브의 연결 부위를 정교하게 시공했는지, 철근을 촘촘히 박았는지 여부도 수사의 초점이다. (조선일보, 1995년 7월 8일, '"5층 기둥 철근, 4층 반도 안 돼"')
'무량판 구조'가 28년 만에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4월 붕괴 사고가 벌어진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량판 구조로 지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특히 무량판 구조가 지난 1995년 우리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도 논란이 됐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런 우려에 무량판 구조 적용 아파트만 골라 일제 점검을 하기로 하면서 공포감은 더욱 확산하는 분위기다. ▷관련 기사: 공법 문제없다는데…'무량판 주차장'만 줄줄이 점검, 왜?(8월 2일)
삼풍백화점 붕괴로 '오명'…2010년대 재등장
우리나라의 아파트 건축 공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벽식 구조 △기둥식 구조 △무량판 구조다. 이 중 무량판 구조는 '없을 무(無), 대들보 량(梁)'이라는 말 그대로 '대들보가 없는' 구조로 이해하면 쉽다. 보 없이 기둥 위에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얹는 건설 공법이다.
과거에는 백화점이나 고층 상업용 시설에 주로 사용됐다. 하지만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한동안 무량판 구조는 국내 건설 현장에서 기피 대상이 됐다.
무량판 구조의 경우 층고를 높일 수 있고 내부 공간 활용이 비교적 용이하다. 이런 점이 장점으로 다시 부각하며 최근 들어서는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2010년대 중반부터 지하주차장을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문제가 된 한국토지주택공사 발주 단지들에 무량판이 적용된 것도 2017년 이후다.
"과한 공포감 자제…설계·시공 지침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 공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전 세계적으로 검증된 공법이라는 설명이다. 국내에서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삼성이 무량판 구조를 택했다는 점이 거론된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13년 헬기 추락사고로 외벽이 무너졌지만 건물 구조에는 손상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관련 기사: 검단·광주 붕괴 사고에 등장한 '무량판 구조' 어떻기에?(5월 4일)
하지만 슬래브와 기둥을 연결하는 부위를 철근 등으로 탄탄하게 설계·시공해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자칫 기둥이 슬래브를 뚫고 무너질 위험성이 있다는 것. 이를 펀칭 현상이라고도 한다. 펀칭 현상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기 바로 전날 백화점 옥상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무량판 공법은 슬래브와 기둥 연결부가 가장 취약하다"며 "이 부분의 철근이 누락되거나 콘크리트 강도가 낮을 경우에는 당연히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무량판 구조는 철근 누락 등 부실 설계·시공과 만났을 때 자칫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삼풍아파트와 인천 검단 아파트 역시 슬래브-기둥을 꼼꼼하게 연결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설계는 물론 시공과 감리 전 단계에서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은 물론 관리 소홀 등 총체적 부실이 낳은 인재라는 설명이다.
특히 기둥에 철근이 누락한 사례가 인천 검단 아파트뿐만 아니라 LH 발주 아파트 19곳에서 추가로 발견되면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공공주택은 물론 민간 아파트에 적용된 무량판 구조에서도 철근이 누락됐다면 큰 사고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무량판 구조 자체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할 경우 또다시 국내 건설 현장에서 이 공법이 기피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도를 더 높이고 관련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안형준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무량판 구조 장점이 많은 대신 제대로 설계하고 시공해야 하는 공법"이라며 "정확한 구조 설계는 물론 전단 보강근을 철저히 배근하고, 또 이를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품백화점 역시 무량판 구조라서 무너졌다기보다는 설계와 시공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사고가 났던 것"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무량판 구조에 대한 과한 공포심을 심기보다는 앞으로 무량판 구조에 대한 설계 및 시공 지침서 등을 도입해 철저히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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