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출시하는 일품진로 23... 증류식 소주 2차전 ‘숙성으로 붙었다’
지난해 증류식 소주가 불을 붙인 우리나라 고급 소주 시장이 올해 ‘나무통 숙성 소주’로 타오르고 있다. 대기업부터 소규모 증류소, 외국인까지 나서 나무통 안에서 익힌 소주를 선보이는 추세다.
나무통에서 소주를 넣어 수개월 이상 숙성하면 투명했던 소주가 호박색으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나무 향과 색을 머금으면서 위스키 못지 않은 풍미를 띈다. 자연히 가격도 몇곱절로 뛴다.
전문가들은 ‘서민의 술’로 획일화한 소주가 지난해 증류식 소주를 거쳐 올해 ‘코리안 라이스 위스키’라는 새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고 풀이했다.
8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다음달 나무통에서 숙성한 초고가 증류식 소주 ‘일품진로 23년산’을 선보인다. 일품진로는 우리나라서 시판하는 소주 가운데 가장 오래 숙성한 제품이다. 제일 비싼 소주기도 하다.
하이트진로는 경기도 이천공장 원액 창고에서 풍미가 가장 뛰어난 원액을 선별해 이 제품을 매년 8000병만 만든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이 가운데 대부분은 오래 거래한 식당 같은 유흥채널에 공급한다. 시중에서 소비자가 살 수 있는 물량은 극히 일부분이다. 이 때문에 매년 출시 때마다 순식간에 매진 행렬을 빚는다.
가격도 매년 오르고 있다. 2018년 일품진로 18년산 출고가는 6만5000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일품진로 22년산은 18만원으로 5년 사이 3배 가까이 뛰었다. 올해는 지난해 가격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그동안 매년 창립기념일을 전후해 일품진로 고연산 제품을 내놨지만, 올해는 ‘일품진로 오크 43′ 제품 출시에 맞춰 발매 시기를 미뤘다.
지난달 새로 나온 이 일품진로 오크 43 역시 나무통에서 12년 동안 숙성한 소주 원액을 8% 정도 섞어 만들었다. 일품진로 22년산이나 23년산에 비하면 저렴한 값으로 나무통 숙성 풍미를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다.

주류 대기업보다 먼저 우리나라 증류식 소주 시장을 이끌어온 화요는 2011년부터 나무통에서 숙성한 화요 XP(extra premium)를 내놨다.
화요 XP는 나무통에서 5년을 익혀야 빛을 볼 수 있다. 유럽연합(EU)는 2020년 우리나라에서 만든 나무통 숙성 증류주 가운데 최초로 이 술을 ‘위스키’라고 인정했다.
국내 주세법은 증류식 소주를 나무통에 넣는다고 해서 위스키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주세법상 위스키는 싹을 틔운 곡물을 원료로 발효시킨 술덧을 증류해 나무통에 넣어 저장한 것을 말한다. 증류식 소주는 맥아(몰트) 같은 싹을 틔운 곡물이 아니라, 누룩 혹은 입국처럼 통곡물을 재료로 만든다.
반면 스코틀랜드와 미국 등 국제 주류 분류법은 정해진 숙성 기한만 지키면 증류식 소주를 나무통에 넣어 익힌 술을 ‘싱글 라이스 위스키’로 인정한다. 국내 시장에서는 위스키가 아니지만,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는 위스키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세계 주류업계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나무통 숙성 소주를 고유한 코리안 위스키로 받아 들이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가령 농업회사법인 토끼소주가 만드는 토끼소주 골드는 세계 3대 주류 대회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 월드스피릿 컴피티션(SFWSC)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더블 골드(Double Gold)’ 메달을 받았다. 이 소주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증류식 소주를 만들던 미국인 브랜 힐이 충청북도 충주에서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도 증류주 애호가를 중심으로 나무통 숙성 소주는 차차 입지를 넓히고 있다.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스마트브루어리 마한 오크는 375밀리리터(ml) 한 병에 2만4000원이라는 가격에도 출시와 동시에 전량이 팔렸다. 이 술은 수입산 나무통을 쓰지 않고, 충청북도 영동에서 만든 국산 참나무통을 사용한다.
이들 국산 나무통 숙성 소주는 원액 부족으로 대체로 한정 수량만 빚는다. 그나마 예약 판매로 모든 물량이 동날 정도라 일반 소비자는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일부 소비자들은 이 점에 착안해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스코틀랜드 유명 위스키 브랜드 ‘발베니’를 본따 나무통 숙성 소주를 ‘쌀베니(쌀로 만든 발베니)’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한국식품연구원 관계자는 “맥아로 만드는 위스키에 비하면 증류식 소주는 쌀로 만들기 때문에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목넘김이 훨씬 부드러운 편”이라며 “같은 도수 위스키에서 느껴지는 거친 느낌이 적어 입문자, 혹은 위스키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일반 소비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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