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탓이오"없는 韓여축 어른들,겸허한 성찰 없인 미래도 없다[女월드컵 결산①]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대한민국 여자축구가 5일 2023년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서 16강 탈락 후 귀국했다. 2015년 캐나다 대회 이후 사상 두 번째 16강을 자신했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콜롬비아와의 1차전에서 0대2로 완패했고, 벼랑끝 모로코와의 2차전에서 0대1로 2연패, 16강이 멀어졌다. 'FIFA 2위' 독일과의 최종전에서 1대1로 비기며 승점 1점, 대회 첫 골을 넣은 데 만족해야 했다. 1무2패, 16강 탈락. 핑계 없는 무덤도 없지만, 이유 없는 결과도 없다. 냉철한 비판과 명확한 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현주소와 가야할 길을 짚는다.[편집자주]
2019년 프랑스여자월드컵 노르웨이와의 최종전, 3전패를 확정지은 후 선수들이 믹스트존에서 펑펑 울었다. "4년 후엔 절대 이렇게 하지 않겠다. 후회없는 월드컵을 하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2019년 말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콜린 벨 감독이 대한민국 여자축구 사령탑에 선임되고, '고강도' 축구를 부르짖었고, 2022년 아시안컵에서 호주를 꺾고 사상 첫 결승에 진출하며 기대감은 커졌다. '고강도, 높게 , 강하게, 도전하라!' 슬로건도 매력적이었다. 16강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진실은 피치 위에 있다'던 그의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콜롬비아, 모로코전 2연패 직후 지소연은 "4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죄송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조소현은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실력이다. 우리 실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책하는 건 오직 선수뿐이었다.
▶4년간 제자리걸음, '내 탓이오' 없는 어른들
위기의 순간, 어른들은 작심한 듯 서로를 탓했다. 벨 감독은 콜롬비아, 모로코전 패배 후 잇달아 한국 여자축구 시스템과 WK리그의 수준을 맹렬히 비판했다. 그가 줄기차게 주창해온 '고강도'는 대표팀에서 반짝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초·중·고·대, 실업팀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철학이자 원칙이어야 한다고 했다. "WK리그가 느리고, 경쟁력이 없다"면서 "선수들이 이겨도 져도 큰 감흥이 없는 난센스 리그"라고도 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주장이었지만 '2연패 졸전' 후 '고강도' 수장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변변한 유효슈팅 하나 날리지 못한 해당 경기의 전술이나 시종일관 답답했던 고구마 경기력, 패인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한국 여자축구 시스템에 대한 '거시적'인 변명으로 일관했다.
대회 이전 혹은 이후에 할 이야기가 월드컵 현장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며 관중석에서 속태우며 경기를 지켜본 WK리그 감독들도 뿔이 났다. 한 지방구단 감독은 "벨 감독이 우리 팀 선수들을 보러온 적이 한번도 없다.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임기 초에 간담회를 한번 했지반 일방적인 자기 이야기만 하더라"고 했다. 또다른 감독은 "A선수는 최전방에 써야 하는 선수이고, 측면에선 B만큼 잘 뛰는 선수가 없는데 아예 쓰질 않더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아이티와의 최종 평가전서도 꽁꽁 숨겼던 '16세 신예' 케이시 페어를 월드컵 무대에 깜짝 데뷔시킨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2-0으로 앞선 상황이 아닌, 0-2로 뒤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생초보' 페어를 데뷔시키는 게 맞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오규상 여자축구연맹 회장은 벨 감독을 대놓고 비판했다. "대참사다. 벨 감독은 사퇴해야 한다. 23명 선수 개개인 성향에 대한 파악도 안됐다. 사과를 해야 할 감독이 WK리그 탓만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여자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6연패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 서로가 '내 탓이오' 가슴 쳐도 모자랄 상황에 감독은 월드컵 기자회견에서 리그와 연맹을 탓하고, 리그와 연맹은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를 비난했다. 실로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왜 지난 4년간 우리만 제자리걸음이었는지, 모든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협회-연맹-대표팀, 모두의 반성 없인 미래 없다
대한축구협회도 무관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4년 전 프랑스월드컵 현장엔 당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 김판곤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 WK리그 감독들이 동행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현장에 협회 관계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축구인 사면 논란으로 임원진이 일괄사표를 내면서 여자축구 대표팀을 살뜰히 살펴온 홍은아 전 부회장(이화여대 교수)이 함께하지 못했고, 장외룡 부회장이 모로코전 전날 도착했지만 여자축구와 하루아침에 친해질 순 없었다. 정몽준 KFA 명예회장(FIFA 전 부회장)이 유일하게 1-2차전을 관전했고, 정몽규 KFA회장은 3차전 독일전을 현장 직관했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 모두 발전했는데 우리만 제자리걸음이란 건 기자회견 때마다 체감할 수 있었다. 모로코는 2020년부터 여자축구 발전을 위한 4개년 계획을 세우고 1-2부 프로리그를 출범시키고 범국가적인 지원을 하고 있으며 1차전 상대 콜롬비아는 여자 코파아메리카에서 준우승한 강호. 코파아메리카 결승 현장엔 4만명 넘는 관중이 운집했다며 "국민을 위해 뛴다"고 했다. 왜 우리만 똑같을까. 2010년 17세 이하 월드컵 우승, 20세 이하 월드컵 3위, 2009년 베오그라드 유니버시아드 금메달을 딴 이 황금세대 선수들이 왜 성인 월드컵 무대에선 매번 고전할까.
서로를 탓할 시간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겸허한 반성 없인 미래도 없다. WK리그가 벨 감독의 눈에 차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표팀 선수 대부분은 이 리그 출신이다. '리스펙트'가 필요하다. 여자축구연맹도, WK리그 감독들도 큰 그림을 그릴 때다. 세계 축구의 벽을 목도했다면 감독 탓 말고 이제는 혁신을 위해 배우고 함께 노력해야할 때다.
귀국길, 벨 감독은 비로소 '책임'을 이야기했다. 5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그는 "독일전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런 모습이 1, 2차전에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면서 "감독으로서 팀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냉정함을 갖고 분석을 진행해 이번 대회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향후 팀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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