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묻지마 흉악범죄에… 처벌 강화 법안 논의 불붙나
국회에도 관련 법안들 계류 중
전문가들 “범죄 예방·법 집행 엄격성에 초점 맞춰야”
서울 신림동과 경기도 서현역 등지에서 소위 ‘묻지마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고, 살인을 예고한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거나 흉기를 든 사람들이 시내 한복판을 배회하다가 체포·검거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회적 증오심을 표출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불붙고 있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도 중요하지만, 범죄 예방과 법 집행의 엄격성에 입법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야, ‘묻지마 흉악범죄’ 처벌 강화 한목소리
8일 정치권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외톨이 테러 등을 두고 여야 모두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과 정부는 법무부와 협의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를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사실상 사형제가 사문화된 상황에서 최고형 도입을 시사한 것이다.
휴가 후 지난 7일 국회에 복귀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경찰서를 방문해 민생 현장 상황 점검부터 나섰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을 비롯해 모방 범죄, 범죄 예고 등 근본적인 강력 대처를 강조했다.
국민의힘 소속 안철수 의원도 자신의 지역구인 분당구 서현역 일대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 ‘묻지마 범행’에 대한 가중 처벌 등 엄벌에 처하는 제도를 만드는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주영 민주당 의원도 ‘묻지마 범죄’ 경계와 예방을 위해 지역구인 김포 일대를 점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선 가중 처벌 법안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미 국회에는 불특정 다수 또는 사회 증오심 표출을 목적으로 한 범죄를 대상으로 한 가중 처벌 법안이 계류 중인 상태다. 대표적인 법안이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과 유정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지난 2020년 11월 조 의원이 발의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은 사회에 대한 증오심, 적개심을 표출할 목적으로 상해·폭행·살인죄를 범할 경우 해당 죄의 형을 2배까지 가중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유 의원이 2021년 5월에 발의한 특가법 개정안에는 ‘묻지마 범죄’ 또는 ‘무차별 범죄’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하고,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혹은 상해에 이른 경우를 구분해 가중 처벌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만인 지난달 28일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흉악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교화 가능성이 없는 경우 ‘가석방 없는 무기 징역’ 또는 ‘무기 금고’ 판결을 선고하도록 한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을 이르면 이번 주 내로 발의할 예정이다.
◇전문가들 “가중 처벌 더해 예방책 마련 입법도 추진돼야”
전문가들은 일단 국회에서 관련 법안 논의가 본격화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국회에 계류된 채 있던 법안이 졸속 처리될 것도 우려한다.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2~3년간 잠든 법을 급하게 통과시킬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범죄 발생 후 가중 처벌도 중요하지만, 예방책 마련 및 엄정한 법 집행에 입법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현출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사후약방문’처럼 양형을 높이는 표면적 대책은 제일 쉬운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방식”이라면서 “해당 사건이 왜 발생하게 됐는지 등 사회적·근본적 문제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나 제도 도입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처벌 상한선은 사문화됐다고 해도 아직 살인의 최고형인 ‘사형제’가 있기 때문에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등 형량을 강화하는 ‘하한선 올리기’로는 역부족”이라며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게 집행되는 ‘법 집행의 엄격성 및 일관성’이 실제 범죄 척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여야가 정쟁을 치르는 사이 긴급 민생·안전과 관련된 법안들이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 채 사라졌다가 일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급하게 계류된 법안을 들고 오는 게 국회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총선까지 앞둔 상황이라 여야 모두 상대가 발의한 법안이 서로의 공적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할 가능성도 크다. 졸속 처리조차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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