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누가 물가를 진정시켰나

여론독자부 2023. 8.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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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인플레 진정·저실업률 긍정 지표
연준 금리인상 등 정통대책 덕분
"기업 폭리탓 고물가" 포퓰리스트
자신들의 공인것처럼 의기양양
[서울경제]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실업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경제지표가 잇따르자 일부 경제 분석가들은 경기 침체 전망치를 하향 수정했다. 좌파 진영은 예상 밖의 경기 호조를 그들의 공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그들은 이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정부가 한 일 대신 하지 않은 일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미국 경제가 우리 모두의 희망대로 연착륙에 성공한다면 이는 정부가 앞장서 좌파 포퓰리스트들이 선호하는 기이하고 실험적이거나 비정통적인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 아니다. 대신 공급 충격 완화, 재정 지원 중단, 금리 인상 등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지루하고 표준적인 인플레이션 교정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3월 이후 열 차례에 걸쳐 단행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은 전통적인 경제이론대로 소비자 수요를 둔화시켜 억제된 공급과 보조를 맞췄다. 백악관은 인플레이션 냉각이 바이드노믹스 덕분이라고 말한다. 바이드노믹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바이드노믹스를 ‘연준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설사 연준의 결정이 달갑지 않더라도 행정부가 개입을 자제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예상외의 호조를 보이는 경제는 분명히 바이드노믹스 덕택이고 최소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전임자와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연준의 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자 한바탕 소동을 부렸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적’으로 규정했고 수차례에 걸쳐 그를 파면하겠다고 협박했다. 독립성을 보장받는 중앙은행의 수장을 파면하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한지 의심스럽기는 해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으름장은 시장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을 실천했다면 인플레이션에 대항하는 데 필요한 연준의 장기적인 능력은 크게 훼손됐을 것이다. 연준의 독립성은 물가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결정적 요소다. 경기가 과열되면 금리를 올리는 등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연준은 언제라도 인기 없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실현적인 고물가 전망이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연준의 가장 효과적이고도 저렴한 인플레이션 대응 도구는 금리 인상 자체가 아니라 어렵게 쌓아 올린 연준의 신뢰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뢰성이란 정치적 편의성이나 정치인들의 노골적인 반발과 상관없이 필요할 경우 연준은 반드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일반 대중의 믿음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연준이 연거푸 금리를 올리자 진보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과 정치 평론가들은 중앙은행 관리들을 상대로 가차 없는 인신공격을 가했다. 이들은 파월 의장이 의도적으로 취약한 근로자들의 실직을 유도했고 계급 전쟁을 일으켰으며 고통스러운 경기 침체를 촉발했다고 비난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럴 수 있다. 실제로 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잡으려는 이전의 시도는 대부분 목표점을 지나치면서 경기 침체를 불러왔다. 그러나 진보 진영의 주된 주장은 금리 인상 폭이 잘못 결정됐다는 것이 아니다. 표준적인 인플레이션 대응 도구인 이자율 인상이 해악만 일으키기 때문에 이를 아예 기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금리 인상은 수요를 냉각하게끔 고안됐다. 진보적인 인사들은 과열된 수요가 이번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과 상관이 있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한다. 소비자의 수요가 과충전됐다고 인정할 경우 거의 전 국민에게 경기 부양 수표를 발송한 민주당의 재정 정책이 물가 상승을 거들었다고 시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진보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처음에는 공급망 교란에서 비롯됐지만 지금은 주로 기업의 탐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진단은 경제 교과서에서 추천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처방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상당수의 진보주의 인사들은 비양심적으로 과도한 소비자가격 인상을 금지하자는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의원의 가격통제안을 지지한다.

다행스럽게도 기업의 부당 이익과 폭리가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이라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주장은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비전통적 정책의 옹호론자들은 예상 밖의 경기 호조가 자신들의 공인 것처럼 의기양양해한다. 칭찬과 상은 실제로 공을 세운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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