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맥은 말도 없이 오천년을 살았네

한겨레 2023. 8. 8.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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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백두산 천지 올라가는 길. 사진 조현 기자

그대들이 이 나라를 잘 지켜 주길 바라오

뿌리가 썩지 않도록 잘 보살펴 주시오

군대 있을 때 민통선에 있는 땅굴을 견학한 적이 있다.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탓인가! 하나가 되지 못한 내 나라가 원망스러웠다. 그때 바람이 휭 지나가면서 던져 준 씨앗이 있었는데 그 씨앗이 내 가슴에 들어와 싹을 틔우더니 어느 날 노래가 되었다. 나는 그 노래를 보고 떠오르는 대로 수첩에 적었다. 압록강, 백두산, 한라산, 한강, 동해, 범(호랑이), 태극기, 삼천리, 무궁화… 나는 차근차근 노랫말을 그려 나갔지만 완성될 듯 완성될 듯… 답답하기만 하였다. 1년이 지나서야 거의 윤곽이 드러났지만 노래 이름하고 둘째 연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제대하고 얼마 안 있다가 설악산으로 향했다. 왠지 설악산에 가면 완성될 것 같았다. 하긴 내가 설악산으로 향했다기보다는 설악산이 나를 끌어당겼다고 해야 옳다. 노랫말에 설악산이 빠져서 나에게 항의라도 하려는가 싶었다. 그 산은 오래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산이기도 하였다. 등산화 대신 군화를 신고 겁도 없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버스를 탔다.

집도 사랑도 나무도 3년이 지나야 뿌리를 내린다고 하는데 나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산을 감히 나와 한몸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오래된 벗처럼 생각되는… 수렴동 대피소를 지날 때 오락가락 비가 좀 내리더니만 쌍용 폭포가 보이면서 비가 멎었다. 지금처럼 좋은 등산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상복차림으로 산을 오르다 보니 비에 젖은 개처럼 되고 말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봉정암에 도착하니 어떤 사람이 비옷을 입고 왔다 갔다 하면서 술과 음료수 과자 따위를 팔고 있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고량주 4병을 사더니만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같이 마시자고 했다. 정말이지 나를 구원해 주려는 사람 같았다. 술기운이 돌자 그 사람은 자기가 신문 기자라고 말했고 나는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아직 내가 사회 구성원이 되기에는 뭔가 모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잠을 자야 했다.

하룻밤 자고 대청봉에 올랐다. 경험도 없이 혼자서 대청봉에 올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이끌고 이곳으로 인도한 것 같았다. 정상에 오르자 사방을 둘러싼 구름바다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구름 위로 드문드문 솟아난 봉우리들은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보였고 그래서인지 배를 띄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구름바다에 배 띄우면 아버지 고향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상 부근에 두꺼운 방명록이 몇 권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다 ‘아, 구름바다!’라고 썼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휭 나타난 노랫말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항일유적답사단이 백두산 천지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설악산을 휘휘 돌아 동해로 접어드니

아름다운 이 강산은 동방의 하얀 나라

동해에 큰 태양은 우리의 희망이라

이내 몸이 태어난 나라 온 누리에 빛나라

그렇게 떠오르지 않던 두 번째 연이 한 방에 해결된 것이다. 흥얼거려보니 기가 막히게도 딱 들어맞는다. 비선대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려가다가 몇 번 넘어져서 어깨를 다쳤는데 너무 기뻐서 아플 겨를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불러보았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딱 들어맞았다. 노래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악보 빈자리에 노랫말을 옮겨 적는데 갑자기 손이 멈췄다. 노래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두 번째 연은 내가 지었다기보다는 산에서 얻어온 것이 아닌가. 작사에 내 이름을 쓰자니 양심에 걸리는 것 같고 산신령이라고 쓰자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그 뒤로부터 누가 나한테 작곡가, 작사가라고 하면 괜히 쑥스러워지곤 하였다. 산에서 귀한 약초를 캐는 사람처럼 나도 노래를 캐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산신령이 던져 주는 노래만 받아야겠다 생각한 것도 그때였다. 그때부터 틈나는 대로 산을 찾았다. 높은 산 낮은 산 가리지 않고 다녔다. 그러다가 198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산을 가기 시작했고 평균 스무 번 정도 오르면 산신령이 숨겨 놓은 노래를 캘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설문 조사 한 것을 어떤 방송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을 물었더니 한강이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고 낙동강이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압록강이라고 말한 아이는 없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이라고 말한 아이들은 있는데 백두산이라고 말한 아이는 없었다. 심지어 북한을 외국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하늘에서 보내온 위성사진을 보면 우리나라가 조그맣게 보인다. 비록 남북이 갈라져 있지만 남도 북도 다 우리나라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은 압록강이고 가장 높은 산은 백두산이다. 이렇게 쉬운 걸 아이들은 왜 몰랐을까? 학교에서 잘못 가르친 거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지금까지 만든 노래는 대부분 산에서 캔 노래를 다듬어 발표한 것인데 이 노래는 상상으로 만든 부분이 좀 있었다. 바로 압록강과 백두산이었다. 그 시절에는 그곳으로 가는 게 불가능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드디어 세월이 한참 흘러 두만강도 보고 압록강도 보고 백두산도 보게 되었다. 백두산에 올라 내 나라를 내려다보면 한라산도 보이고 동해, 서해도 보이고 아버지 어머니 고향도 다 보이는 줄 알았다. 물론 만화 같은 생각이었지만 백두산에 올라서니 백두산이 이 터를 지켜 주고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또 하나는 무궁화였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인 줄 알았는데 북쪽에는 무궁화가 자라기 힘들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라꽃 무궁화는 이 터를 지켜 주지 못한다. 진달래가 나라꽃이 되었으면 좋겠다마는 아직도 통일은 멀기만 하다. 손을 내밀면 뒷걸음치는 통일이다. 진달래는 오래전부터 내 나라가 하나임을 알렸건만 나라 다스리는 사람들이 문제로다.

백두대간 항공촬영.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우리 동네에 상가주택이 주르륵 있는데 무얼 해도 장사가 안되는 가게가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터가 안 좋아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한민국! 터가 좋을까? 땅은 가꾸기 나름이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은 허허벌판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었고 경상도에 사는 내 동무는 돌밭을 일궈 쌀농사를 하고 있다. 땅은 무엇으로 가꾸는가? 정서다. 우리의 숨결이 모여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이 정서가 되어 터전을 이루는 것이다. 다른 나라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는 요즈음, 그 물결에 우리의 정서가 휩쓸려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 하나 걱정해봐야 무슨 소용 있겠냐마는 그래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터를 우리가 지키지 못하면 장사가 안되는 가게처럼 될 것이며 나중에는 터가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댈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36년간이나 빨아먹었다. 터가 좋지 않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이 나라를 잘 지켜 주길 바라오. 뿌리가 썩지 않도록 잘 보살펴 주시오! 그리하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푸른 잎으로 무성한 나라가 될 것이오. 장사 안되던 우리 동네 그 가게! 주인이 바뀌고 새로워지더니 마침내 장사가 잘되는 가게가 되었다. 드디어 노래 이름이 생각났다. ‘터!’

저 산맥은 말도 없이 오천 년을 살았네

모진 바람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저 강물은 말도 없이 오천 년을 흘렀네

온갖 슬픔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설악산을 휘휘 돌아 동해로 접어드니

아름다운 이 강산은 동방의 하얀 나라

동해에 큰 태양은 우리의 희망이라

이내 몸이 태어난 나라 온 누리에 빛나라

자유와 평화는 우리 모두의 손으로

역사의 숨소리 그날은 오리라

그날이 오면 모두 기뻐하리라

우리의 숨소리로 이 터를 지켜나가자

한라산에 올라서서 백두산을 바라보며

머나먼 고향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구나

백두산의 호랑이야 지금도 살아 있느냐

살아있으면 한 번쯤은 어흥하고 소리쳐봐라

굽이치는 압록강아 한강으로 흘러라

같이 만나서 큰 바다로 흘러가야 옳지 않겠나

태극기의 펄럭임과 민족의 커다란 꿈

통일이여 어서 오너라 모두가 기다리네

불러라 불러라 우리의 노래를

그날이 오도록 모두 함께 부르자

진달래 꽃바람 삼천리에 퍼져라

그날은 오리라 그날은 꼭 오리라

-‘터’,(1977/1980작)

글 한돌(음악가,작곡가,가수,수필가)

***이 시리즈는 순천 사랑어린배움터 바루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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