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헛돈 쓰지 마라 [광화문]

양영권 사회부장 2023. 8. 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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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김세연 씨 부부는 다음 달 출산할 예정이다. 그들은 미국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벨기에에서 인공수정 시술을 받았다. 한국인 부부가 먼 외국에서 이런 절차를 밟은 것은 이들이 레즈비언 커플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동성 간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활발하게 언론 앞에 나서면서 당찬 모습을 보이지만, 이 땅에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는 그렇게 자신이 없다. 태어난 아이가 친구들에 '아빠가 없다'며 괴롭힘을 당하면 이민 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출산을 앞둔 규진 씨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말했다.

전통적인 가정은 남녀의 혼인, 그리고 혈연관계로 이뤄진다. 우리 사회에선 '전통적'인 것은 곧 '정상적'이다. '전통적인' 가정의 구성원이 아닌 아이가 우리 사회에서 '비정상적'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게 김 씨 부부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정이 언제까지나 '일반적인' 가정이라는 법은 없다.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을 뜻하는 혼인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1690 건으로, 10년 전인 2012년 32만7073 건에서 41% 감소했다. 2020년 기준으로 25~49세 인구 중 혼인 경험이 있는 남자는 52.9%, 여자는 67.1%다. 10년 사이 남자는 11.8%포인트, 여자는 10.3%포인트 하락했다. 1인 가구가 특히 많이 늘고 있고, 동거(동성 또는 이성 간) 가구도 적지 않다.

'혼인 감소가 저출생의 이유다'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절반만 맞는 말이다. 출생은 혼인신고를 한 남녀 부부에게서 이뤄진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즈비언 김 씨 부부의 출산은 우리 사회에서 출생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저출생 대책의 한계를 설정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서 13세 이상 인구 가운데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은 50%에 머물렀다.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 절반에게 과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늘려주고 육아수당을 더 주고 신혼부부 아파트 특별공급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결혼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될까.

저출생 대책은 '혼인'과 출생을 별개로 생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전통적인 혼인 부부의 출산이 출생의 거의 전부인 한국은 독특한 나라다. 한국은 혼외 출생률이 2020년 기준 2.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41.9%에 달한다. 아이들의 거의 절반이 결혼하지 않은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얘기다. 칠레와 멕시코, 코스타리카는 '혼외 출생률'이 70%를 넘고 아이슬란드와 프랑스는 60%대다. 청교도가 세운 보수적인 나라 미국도 40.5%로 평균에 가깝다.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통계다. 한국의 혼외 출생률이 OECD 평균정도만 된다면 합계출산율은 1.55명으로, 현재(2022년 기준 0.78명)의 2배가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김영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발표되기도 했다. 전통적인 혼인 관계에서 이뤄지는 출생만 정상적으로 취급하는 문화가 결국 아이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전국을 경악하게 한 미등록 영아 살해·유기 역시 혼외 출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열악한 사회 지원이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 됐을 것이다.

동성혼을 하루빨리 허용하라는 뜻이 아니고, 혼외 출생을 장려하라는 말도 아니다. 모든 출생을 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치관은 바뀌는데 표준만 과거에 붙잡아둘 수는 없다. 태어남에 대해서까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오래된 잣대가 한국을 소멸의 길로 내몰고 있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저출산 예산을 책정했음에도 오히려 출산율은 급전직하했다는 데서 깨달아야 한다. 오래된 잣대를 뜯어고치지 않고 쏟는 돈은 모두 헛돈이라는 것을.

양영권 사회부장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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