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여 년 전 단명한 수나라에서 지금의 중국 모습 발견할 수 있을까?
5년 5개월 번역 작업 끝에 국내 최초 완역
"무슨 정신으로 이 큰 작업을 하겠다고 덤벼들었는지... 처음에는 아무런 지원군도, 주위의 응원도 없어 혼자서 끙끙 앓았어요. 순전히 중국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역에 임했습니다."
중국의 24사(史)는 중국에서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로 인정받는 역사서 24종의 통칭이다. 잘 알려진 사마천의 '사기'나 '한서' '삼국지' 등이 그중 일부다. 당나라 때부터는 이전 왕조의 공과를 살피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사서를 편찬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익히기에도 바쁜데, 중국 정사까지 살펴야 할까. 5년 5개월 동안 매달린 끝에 당의 재상 위징(魏徵) 등이 저술한 수나라의 역사인 '수서(隋書·지식을만드는지식 발행)'를 완역한 중문학자 권용호(54) 박사는 오히려 '과거의 우리'와 '지금의 중국'을 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중국 정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완역을 계기로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그를 만났다.
"중국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중국이라는 이웃이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근원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수서를 선택했어요."
제기(帝紀) 5권, 지(志) 30권, 열전(列傳) 50권 등 도합 85권으로 이뤄진 수서에서 고구려는 빈번히 등장한다. 수나라는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등 고구려와 4번에 걸친 무리한 전쟁을 치르고 불과 37년(581~618) 만에 역사에서 사라진다. 폭군으로 이름난 수 양제의 전쟁포고문 등을 포함해 고구려에 대한 입장과 인식, 당시 대외 관계, 전쟁의 전개 양상뿐 아니라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사이에서 중립을 천명한 신라의 외교 정책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수서를 통해 아울러 살필 수 있다.
원고지 1만4,189매, 책으로 5,94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팔과 맞바꿨다"고 농담을 건넬 정도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된 작업이었지만, 권 박사는 황제와 주변 인물 등 사람에 관한 '열전'이 마치 옛날이야기 들여다보듯 즐거웠다. 천문의 발달 과정 등을 담은 '천문지', 나라의 제사와 복식 등 예법 제도에 대해 설명한 '예의지', 경제 제도를 다룬 '식화지', 관제에 대한 기록인 '백관지', 지리 개념과 효용을 다룬 '지리지' 등 전문적 지식과 생소한 용어가 필요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고전 한문 원전뿐 아니라 중국에서 출간된 중국어 텍스트를 두루 살펴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그중에서도 지금껏 연구되지 않은 고대 과학과 수학의 내용을 담은 '율력지'는 만만찮은 작업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24절기 해그림자 측정, 동지 때의 태양의 정확한 위치 등 현대 한국어로 설명하기에도 만만찮은 천문과 역법 관련 용어와 난해한 계산이 가득했다. 이에 출판사에서 역사 천문학을 연구한 이면우 춘천교육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율력지의 많은 부분을 현대적 용어로 설명했다.
"'율력지'는 도무지 완성할 수가 없어 출판사에 율력지만 빼고 번역하면 안 되겠느냐 토로했을 정도였어요. 출판사가 만류하며 이 교수님을 소개해 줘 가까스로 출간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명확하지 못한 부분이 있고 이는 해제에서 후학들에게 맡긴다는 당부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죠."
수서 번역 작업만도 방대하기 짝이 없는데, 권 박사는 틈틈이 고구려와 수나라 간의 전쟁 관련 사료를 모아 같은 출판사에서 '고구려와 수의 전쟁'이라는 역사 해설서도 함께 출간했다. 과거의 중국을 아는 것이 현대의 중국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에서다.
"고구려와 마찰을 빚고 전쟁을 치르게 된 것도 결국 수 양제가 고구려 영양왕이 인사를 하러 오지 않자 백만 대군을 꾸려 보복한 데에 기인하거든요. 이웃을 존중하지 않은 1,400여 년 전의 수나라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두고 한국에 보복하는 오늘날 중국이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요."
성실한 학자인 그는, 수서에 이어 중국 정사에 포함되는 북주의 역사서인 '주서(周書)' 번역 작업도 마친 상태다. 대중적 흥행을 기대할 수 있는 원고도 아니고, 권 박사의 전공은 역사도 아닌 중국 희곡 문학. 그럼에도 그가 '고전 중의 고전'인 중국 정사 작업에 천착하는 이유는 일단 완역되고 나면 학술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나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는 저작 콘텐츠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찾아 읽는 '사기'처럼 말이다.
"우리 학계가 논문이 되거나 지원을 받는 것만 공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봐요. 학자들은 본인 전공뿐 아니라 여러 연구의 뿌리가 되는 기초 학문 분야를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사나 경전 번역본이 기본 바탕이 돼 후학들이 다음 연구로 뻗어나가고 다른 저자들이 대중을 위한 역사 저술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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