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태풍’… 느리게 올라가며 피해 키운다
한반도 중심부를 관통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풍 ‘카눈’의 변수는 ‘뜨거운 해수면 온도’와 ‘느린 이동 속도’다. 현재 한반도 주변에는 태풍이 맹위를 떨치기에 좋은 조건이 형성돼 있다. ‘카눈’이 통과할 남해안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1~2도가량 높은 섭씨 29도를 기록 중이다. 수증기는 태풍의 ‘연료’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바다가 뜨거우면 태풍의 세력이 강해지거나 최소한 약해지지 않는다. 실제 ‘카눈’은 6일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세력이 다소 약화한 ‘중’(최대 풍속 초속 25m 이상 33m 미만)으로 우리나라에 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7일 전망에선 ‘강’(최대 풍속 초속 33m 이상 44m 미만)으로 조정됐다. 한반도 내륙 상륙 직전 덩치를 더 키울 가능성도 있다.
올봄 인도양 사이클론 때 이런 양상이 나타났다. 사이클론과 태풍은 명칭은 다르나 같은 기상 현상이다. 올 5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모카’는 내륙에 닿기 전 오히려 덩치가 커졌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올해 전 세계 바닷물 온도가 관측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과 관련이 깊다.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 수증기 증발이 많아지고 태풍이 짧은 시간에 급격히 발달하는 ‘급강화’ 현상을 일으킨다. ‘카눈’도 사이클론 ‘모카’처럼 뜨거워진 바다를 지나기 때문에 예상보다 더 강력한 상태로 우리나라에 상륙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태풍은 상륙하면 세력이 급격히 약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 태풍은 상륙 후에도 바다 수증기를 공급받아 맹위를 떨치는 경우가 많다.
‘카눈’의 북상 속도가 느릴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문제다. 태풍은 내륙을 빠르게 통과할수록 피해가 작아진다. 태풍이 빠르게 움직이려면 이동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여름으로 접어들며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각각 대기 상·하층을 장악하며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상태다. ‘카눈’은 자기 동력으로만 이동하기 때문에 다른 태풍에 비해 속도가 느린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 끝과 끝으로 온종일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와 일본·중국·대만 기상 당국 등이 전망한 ‘카눈’의 예상 경로도 경남 남해안에 상륙해 한반도 중심으로 북상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만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에 따라 이동 경로는 바뀔 수 있다. 태풍이 서울 등 수도권을 직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카눈’은 11일 아침 우리나라를 빠져나간 뒤 12일 오전 북한을 통과하고 곧바로 중국 동북부에 이르러 소멸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비를 뿌리는 것은 11일까지다.
이번 태풍 ‘카눈’의 예상 경로는 2012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산바’ 때와 비슷하다. 당시 ‘산바’로 2명이 숨지고 이재민 3843명이 발생했다. 재산 피해도 3627억원에 달했다. 당초 ‘카눈’은 2020년 9월 영남권과 강원도를 휩쓴 태풍 ‘하이선’처럼 동해안 일대를 따라 북상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북태평양고기압이 세력을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카눈’의 이동 경로도 예상보다 더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태풍과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는 최근 몇 년간 부쩍 늘었다. 2019년 18명에서 2020년 46명으로 급증했다. 작년에도 사망자가 30명이다. 최근 장마로 지반이 약해진 상황에서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면 산사태, 축대 붕괴 등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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