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썰었어”… 칼로 베는 ‘살인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
지난 4일 서울 신촌의 한 PC방. 고등학생 5명이 팀을 이뤄 상대편을 칼로 난자하고 총으로 사살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PC 모니터엔 자신이 칼을 휘두르는 듯한 전투 장면이 펼쳐졌다. 오른손엔 군용 칼이 들려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적의 등을 수 차례 찔렀다. “으악, 으악!” 적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지자 나란히 앉은 학생들은 서로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내가 (적을) 썰었어!”
게임 관련 업체들의 최신(7월 4주차) 집계에 따르면, 인기 게임 상위 10개 중 4개가 이런 ‘총·칼 게임’이었다. 주 이용자는 중·고등학생과 20대 초반 남성이다. 과거에도 총·칼 게임은 있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그래픽 기술이 발달해 게임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이고 생생해졌다”며 “본인이 직접 칼을 휘두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리고 했다.
실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온라인 게임은 흉기로 불특정 다수를 살해하는 것이 주요 스토리다. 살해 과정이 잔인하고 사실적이란 지적이 많다. 유튜브에는 이 게임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이 다수 올라와 있다. 영상을 보면 게임 속 한 남성이 밤에 해변에서 만난 여성의 옆구리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피가 튀고, 핏물이 시신에서 흘러나와 바닷물에 번지는 모습까지 담겨 있다. 또 모바일이나 전용 조작기와 헤드셋을 이용하면 사람을 찌를 때 진동이 울린다. ‘타격감’을 주기 위해서다.
최근 흉기를 이용한 ‘묻지 마 살인’과 살인 협박이 잇따르는 가운데 칼을 이용한 살인 게임과 실제 범죄 간의 연관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한가정학회지가 2001년 발표한 ‘남자 청소년의 컴퓨터 게임 이용과 공격성’ 논문에 따르면,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면 부정적 정서 등이 높아지면서 개인적 공격성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교실은 2013년 ‘게임의 공격성’ 논문을 통해 “온라인 게임 폭력물은 게이머가 직접 키보드, 마우스로 체험하는 형태여서 텔레비전의 수동적 폭력물 시청에 비해서 훨씬 더 효과가 크다”고 했다. 폭력 게임과 실제 범죄의 연관성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잔인한 게임에 많이 노출될수록 실제 공격성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게임과 현실은 별개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게임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것과 현실에서 그렇게 하는 건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했다. 반면 잔인한 게임물을 자주 접하면 폭력에 둔감해지고, 급기야 흥미를 느낄 수 있으며 이런 경향은 청소년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는 체험적 결과가 있다. 본지가 만난 오모(15)군은 매일 3시간씩 슈팅 게임(총·칼 게임)을 한다. 그는 “처음엔 상대방이 피를 쏟고 비명을 지르니 역겨운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은 불시에 상대방을 제거할 땐 짜릿하고 재미있다”고 했다. 정모(19)씨도 “처음엔 칼로 상대를 찌르면 ‘으악’ 하는 비명을 내서 잔인하다고 느꼈는데, 1년 동안 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이모(20)씨도 “10대 때부터 슈팅 게임을 하다 보니 상대 팀을 많이 죽여 이기고 있을 땐 기분이 확 좋아진다”고 했다.
잔인한 장면이 담긴 슈팅 게임은 대부분 청소년이 이용할 수 없는 등급이다. 그러나 부모의 주민등록번호 등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성인 인증을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작년 조사에 따르면, 슈팅 게임을 가장 많이 하는 연령층은 10대(40.8%)였다. 그다음이 20대(40.5%)였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는 게임 등 디지털 매체의 영향부터 고립, 우울 등 여러 요인이 중첩돼 폭발하는 것”이라며 “학교에 정신과 전문가를 투입해 정신 건강이 가장 취약한 청소년의 문제를 진단하고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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