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끓어오르는 지구’의 과학적 의미

김정선 동서대 총괄부총장 2023. 8.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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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동서대 총괄부총장

올 7월은 지구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연일 섭씨 35도를 넘는 폭염으로 유례없는 비상 상황이고, 이란은 51도의 기온을 기록하면서 폭염으로 인한 국가 공휴일을 선포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겨울 막바지에 있을 시기인데도 지금 30도가 넘는 더위를 경험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은 급기야 지구온난화의 시대는 끝나고 지구열대화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하면서 지구촌의 기후위기 대응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열대화’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지구열대화는 ‘글로벌 보일링 (global boiling)’을 번역한 것인데, 직역하면 ‘끓어오르는 지구’다. 우리말보다 영어 표현이 더 강렬한 메시지를 줘서 그런지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글로벌 보일링’의 과학적 의미를 묻는 기사를 보도했다. 과학자들이 높은 기온의 기록을 확인해 준 것은 사실이지만, 끓어오름이라는 표현이 과학적으로 적합한지는 우려한다. 영국 리즈(Leeds)대학의 기상물리학자인 피어스 포스터(Piers Forster) 교수는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이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위해 필요할 수 있겠지만, 그의 강한 발언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를 잃고, 오히려 사람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무감각해지게 될 수 있다고 걱정을 한다.

미국 3M사가 자체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과학현황지수(SOSI)에 의하면 조사가 시작된 2018년 이후 꾸준히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17개국의 응답자들이 과학을 신뢰하고 있다고 답했다. 2023년 보고서에서는 1년 전에 비해 자연재해와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 이슈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고, 응답자의 93%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한다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학이 본인의 삶과 관련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를 포함한 개인 또는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언어는 늘 절제되고, 정확하게 전달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과학적 정보의 전달은 점점 사회적관계망(SNS)을 통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편향되거나 잘못된 정보를 식별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과학적 정보의 전달이 사람들의 성향에 맞춰지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실보다는 듣고 싶은 얘기만을 읽고 듣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명과학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의 올 7월호 특별판 표지는 이러한 현실을 일러스트로 묘사했다.(https://www.science.org/toc/science/381/6656) 즉, 보수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진보를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사람들을 구분해서, 붉은색 사람들은 오른쪽을 향해 문서를 읽고 있고 파란색 사람들은 이들과 등을 지고 왼쪽을 향해 문서를 읽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커다란 메타 형상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의 알고리즘으로 선택적인 과학적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 더 이상 ‘과학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다.

또 다른 과학적 소통의 문제는 성급하고 과장된 표현들인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상온초전도체와 관련해서도 볼 수 있었다.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과학자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논문의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세계 최초’,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 ‘꿈의 물질’ 등의 헤드라인으로 주식시장은 들썩이고 있다. 아직은 검증 과정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기대만큼의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과정들이 과학적이라면 그 자체로서의 의미도 있을 텐데, 진위여부에만 매몰된 논쟁이 걱정스러운 지경이다.


과학적 사실을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과장된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위기의식이나 일시적인 관심만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기후위기의 대응방안을 차분하게 제시해 과학을 신뢰하고 행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오늘날 과학에 대한 신뢰를 가져왔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기후위기의 문제도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빠진 ‘과학적 정보’에 매몰된 요즘의 세태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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