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에 내 민낯을” 15년만에 만난 故이청준

이호재 기자 2023. 8. 8. 03: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평전을 써서 내 거짓을 벗겨다오."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은 2007년 7월 폐암 판정을 받고 몇 달 뒤 이윤옥 문학평론가(65)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평론가는 "이 소설가는 소설에선 허구가 가능하지만, 현실에선 거짓이 존재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평소 자기 잘못에 대해 지나칠 만큼 견디기 어려워한 사람이라 정확하게 쓰려 했다"고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론가 이윤옥씨, 작가의 삶 복원
“2년 전 완성한뒤 1인칭으로 변경”
질투 강했던 고인 단점까지 담아
“평전을 써서 내 거짓을 벗겨다오.”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은 2007년 7월 폐암 판정을 받고 몇 달 뒤 이윤옥 문학평론가(65)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평론가는 ‘청사모’(청준을 사랑하는 사람 모임)에서 1년에 서너 번 이 소설가를 만나며 연을 이어왔지만 독대한 적은 없던 사이였다. 술 잘하는 이 소설가와 달리 커피밖에 못 마시는 이 평론가는 술자리에 끼지도 못했다. 이 소설가가 그런 이 평론가에게 평전을 부탁한 건 ‘객관성’을 위해서였다.

이 소설가는 평론을 위해 인터뷰하면서도 이 평론가에게 “부디 네 상상력이 내 상상력을 이겨서 내가 꾀한 모든 자기합리화를 벗겨 달라. 내 맨얼굴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008년 7월 이 소설가는 타계했고, 15년이 지나 평전이 완성됐다. 지난달 31일 출간된 ‘이청준 평전’(문학과지성사·사진)이다.

이 평론가는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 소설가는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외경(畏敬)에 찬 눈으로 좇던 사람”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대상의 민낯을 응시하는 평전을 쓸 수 있겠냐고 스스로 자문하느라 출간이 늦어졌어요. 삼인칭으로 쓴 평론을 2년 전에 완고했다가 다 갈아엎고 일인칭으로 다시 썼죠.”

이 평론가는 이 소설가의 작품은 물론 메모, 일기, 편지 같은 사적인 기록도 들여다봤다. 또 동료 소설가와 문학평론가를 인터뷰해 이 소설가의 삶을 촘촘히 복원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건 이 소설가의 흠을 들춘 부분이다. 이 소설가는 신춘문예에 7번 낙방하다가 1965년 단편소설 ‘퇴원’으로 등단했다고 했지만, 사실 ‘퇴원’이 첫 작품이었을 정도로 악의 없는 거짓말도 종종 했다. 이 평론가는 “이 소설가는 소설에선 허구가 가능하지만, 현실에선 거짓이 존재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평소 자기 잘못에 대해 지나칠 만큼 견디기 어려워한 사람이라 정확하게 쓰려 했다”고 말했다.

이 소설가가 유년 시절 동경했던 여성들에 대한 서술도 흥미롭다. 평전은 이 소설가의 국민학교(초등학교) 담임교사, 이 소설가가 고등학생 때 가정교사로 입주해 만난 부잣집 딸에 대해 이 소설가가 지닌 열망과 좌절이 작품에 녹아들었다고 분석한다. 이 평론가는 “이 소설가는 작품에서 ‘엄마’가 아닌 다른 여성을 납작하고 밋밋하게 그릴 뿐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했다”며 “이 소설가의 인생 궤적과 작품을 연관지어 이해하려 했다”고 했다.

이 소설가가 암으로 투병하며 몸을 가누기 어려운 순간에도 남이 자신을 부축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혼자 꼿꼿이 걸으려고 했다는 등 말년의 모습도 평전에 담겼다.

“이 소설가가 이 평론을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죽고 나면 하늘에서 이 소설가를 만나 묻고 싶네요. 냉정해야 하는 이 일을 왜 내게 맡겼냐고요.”(이 평론가)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