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 일단 돌입

정순우 기자 2023. 8.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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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민간 293개 단지 착수
지난 6일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경기도 양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천장의 하중을 분산하기 위한 철제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정부는 무량판 구조 기둥에서 철근 부품(전단 보강근)이 빠진 LH 아파트에 대해 보강 공사를 하면서, 무량판 구조의 민간 아파트에 대한 안전 조사에도 착수했다. /뉴시스

정부가 7일 무량판(대들보 없이 기둥으로만 천장을 지탱하는 방식) 공법이 적용된 전국 민간 아파트 약 300개 단지에 대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특히 정부는 지하주차장뿐 아니라 입주민이 사는 주거동(棟)까지 들여다보는 ‘초강수’를 뒀다. 하지만 조사의 실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주거 공간에서 하자가 적발됐을 경우 사실상 보강 조치가 불가능해, 전수 조사 작업이 ‘산 넘어 산’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전수 조사에 나섰지만, 뒷감당이 어렵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상당수 임대였던 LH 아파트와 달리 민간 아파트는 대부분 분양 아파트고, 이미 준공된 아파트의 주거동 조사를 위해선 입주민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집값 하락을 우려한 입주민들이 세대 내부 조사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민간 아파트에 대한 후속 조치를 고민 중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조사와 보강 방법은 앞으로 전문가 협의를 통해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 시작

국토부는 7일 원희룡 장관 주재로 무량판 민간 아파트 전수 조사 계획을 확정하고, 즉각 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대상은 2017년 이후 준공된 188개 단지와 현재 공사 중인 105개 단지 등 293개 단지다. 도면 확인 후 육안으로 시공 상태를 살피고, 콘크리트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비파괴 검사 장비를 동원해 철근이 제대로 들어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그래픽=양진경

정부는 무량판이 적용된 모든 기둥이 아니라, 단지별로 10개 안팎 표본을 추려서 설계도면이 제대로 작성됐는지, 시공 과정에서 철근이 빠지지 않았는지 점검하기로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번 91개 LH 아파트 지하 주차장 기둥만 조사하는 데 꼬박 3개월이 걸렸다”며 “3배나 되는 규모 아파트의 주거동까지 모든 기둥을 조사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만큼, 현실적으로 표본 조사를 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 과정의 가장 큰 난제는 주거동 조사다. 대상인 293개 단지 중 105개는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돼 있다. 이 중 59개 단지는 이미 입주까지 마친 상태다. 세대 내부를 점검하려면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부실 시공 아파트라는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하는 입주민의 동의를 받는 게 쉽지 않다. 콘크리트의 강도까지 조사하려면 페인트와 벽지까지 제거해야 한다. 정부는 입주민 동의를 못 받을 경우, 외부에서 점검 가능한 기둥들을 최대한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정밀 조사는 불가능하다. 실제 아파트 입주민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무량판 구조 검사 꼭 받아야 하느냐” “우리 아파트는 무량판 구조냐”라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산 넘어 산... “하자 발견 때 더 큰 혼란”

조사 과정에만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게 아니다. 주거동 안전 점검에서 철근 누락 같은 하자가 발견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지하 주차장은 기둥에 철판을 덧대거나 기둥을 추가 설치하는 방식으로 보강이 가능하다. 하지만 거주 공간에 이 같은 조치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파트 시공사 관계자는 “거실이나 방의 기둥에 보강 공사를 하면 내부 공간의 구조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철근 누락이 확인된 것 정도의 문제로 보강 공사를 하는 입주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보상 문제도 걸림돌이다. 정부는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LH 아파트에 대해서는 “입주민이 원할 경우 무조건 계약 해제를 수용하고, 법원에서 ‘중대 하자’로 인정되면 그에 맞는 손해배상도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민간 아파트에 대해서도 LH에 준하는 보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부실이 얼마나 심각하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보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입주민과 건설사, 설계사 간에 복잡한 법적 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주택관리업계 관계자는 “정부에 책임이 있는 공공주택인 LH와 달리 민간 아파트는 책임 소재를 두고 소송이 훨씬 복잡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의 주거동까지 전수 조사하는 것은 애초 무리라고 지적한다. 특히 주거동은 무량판 구조뿐 아니라 좀 더 안전한 벽식 구조가 혼합돼 있는 게 대부분이다. 박성준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은 “구조설계를 볼 때, 주거동의 경우 주차장처럼 무너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잘못된 설계와 시공 관행이 문제지 무량판 자체는 선진적인 기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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