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무량판과 파사드 논란, 같고도 다른 점

강필희 기자 2023. 8.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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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공법 여럿 등장하지만 결국은 이를 구현할 사람 문제
전방위 조사 시작된 LH와 달리 오페라하우스 진실은 미궁 속

7년 전 대만 남부에 진도 6.4의 강진이 났을 때 지진 자체보다 화제였던 건 무너진 건물 잔해였다. 철근과 콘크리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 페인트통 식용유통 스티로폼이 대거 쏟아진 것이다. 자연스레 ‘두부 빌딩’이란 별명이 붙었다. 우리나라 건설업계에도 ‘두부 빌딩’을 능가하는 신조어가 생겼다. ‘순살 아파트’다. 천장을 받치는 기둥에서 철근을 빼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가 얻은 오명이다. 건설대국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LH 순살 아파트 사태를 보노라면 부산 오페라하우스 논란과 묘한 기시감이 든다. 우선은 둘 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공법 이름이 등장한다. LH 사태의 ‘무량판’은 보 없이 기둥으로 천장을 지탱하는 공법이다. 접합부를 강화하기 위해 철근을 충분히 감아줘야 하지만, LH 아파트에선 이 공정을 설계나 시공 단계에서 빠트린 곳이 많아 사달이 났다. 오페라하우스는 전면부(파사드)를 ‘진주 품은 조개 모양’으로 만들려면 어떤 공법을 적용해야 할 지 결정 못해 난리다. 최초 설계자가 제안한 ‘트위스트 공법’은 시공사가 못하겠다 하고, 시공사가 들고 나온 ‘폴딩 공법’은 설계사가 반대하고, 부산시가 다시 콘테스트를 거쳐 대안으로 선정한 ‘스마트노드 공법’은 시공과 설계 양측의 공방 때문에 공사를 하다 중단했다. 중요한 건 ‘무량판’이든 ‘스마트노드’든, 구조적 안정성이나 실현 가능성은 업계에서 이미 입증됐다는 사실이다. 문제 원인이 공법 자체는 아닌 셈이다.

두 사안의 비슷한 점은 또 있다. 바로 발주처의 무책임이다. LH는 자산 200조 원에 공사 발주액이 연간 10조 원에 이르고, 직원이 1만 명 가까운 거대 공기업 집단이다. 그런 기관이 자사 브랜드를 걸고 짓는 아파트의 시공사 설계사 감리사를 선정하고 승인하는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 했거나 안 했다. 심지어 LH가 직접 감리를 맡은 아파트에서조차 철근 부족 사례가 불거졌으니, 택지개발과 주택공급을 주업으로 하는 공기업이 맞나 싶을 정도다.

무책임 무능력이라면 부산시도 뒤지지 않는다. 오페라하우스 공사 중단 사태의 진상 규명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부산시가 현재 하는 작업은 3개 공법의 제안자가 각자 주장대로 실물을 만들어내는지 여부를 지켜보는 것이다. 일명 설계의 구현 검증이다. 4년 전 시공사가 공사를 시작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트위스트 공법을 포기했을 때 잘잘못을 따지기는커녕 적용 공법을 아예 바꿔 버렸고, 지난해 7월 시공사와 설계사가 스마트노드 공법으로 대립했을 때도 책임 추궁은 미룬 채 후보 전부를 테스트하자는 식으로 접근하며 본질을 희석해 버렸다. 착공한 지 5년 넘은 공공건물의 핵심부 설계를 이제 와서 공법별로 다시 검증한다는 게 말이 되나.

무량판과 파사드 논란이 기본 얼개는 비슷할지라도 향후 전개 과정과 최종 결론은 180도 달라질 공산이 크다. 한쪽은 원인을 분석해 그에 맞는 처방이 나오지만, 다른 한쪽은 영원히 진실이 묻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LH 사건은 벌써부터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감사원 감사와 시민단체 폭로 등으로 LH 퇴직 직원들이 설계 시공 감리회사에 대거 취업하고, 이들 회사가 LH 공사를 수주해 부실 건물을 양산한 사실 말이다. 국토교통부가 감리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섰고, 경제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칼을 빼들었다. 2년 전 부동산 투기 때처럼 그저 시늉에 그칠지언정, LH는 LH대로 ‘반카르텔 본부’를 만들고 관련 업체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러나 오페라하우스는 근원에 아직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했다. 부산시가 자체 감사에서 밝혀낸 건 소방과 기계설비 부실 시공, 벽면 균열 같은 주변적 하자 뿐이다. 설계 시공 감리 3자를 전면적으로 조사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가려내는 게 이렇게도 지난한 일인 줄 미처 몰랐다. 이쯤 되면 오페라하우스 사태를 초래한 원인은 설계사도 시공사도 아닌 부산시 아닌가? 오페라하우스에도 발주처인 부산시와 공사로 얽힌 업체가 수십 군데다. 이들 기관에는 LH처럼 퇴직한 건설직 혹은 건축직 공무원을 전관으로 채용한 사례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LH 사태는 개개인의 사적 이해와 강력하게 맞물려 있다. LH 아파트를 분양받았거나 임대한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라도 철저한 원인 규명과 개선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그러나 오페라하우스는 다르다. 세금으로 올리고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건축물이다. 비용과 피해가 모두 사회화 된다. 누구 하나 끈질긴 감시조차 없다. 시민은 정확한 내막을 모르고, 그걸 잘 아는 공무원은 주기적으로 갈린다. 이른바 이권 카르텔은 버섯처럼 자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랜드마크’ 하나도 제대로 못 짓는 부산의 수준만 참혹하게 드러나고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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