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왜 사람들은 ‘가짜 뉴스’에도 쉽게 분노하는가
불투명한 빈틈 파고들어
가짜 뉴스라 무조건 타박 말고
정부, 신뢰 회복 계기 삼아야
퇴근 시간 만원 버스에서 한 여성이 울부짖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내리는 과정에서 다섯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아이가 떠밀려 내렸는데 엄마가 함께 내리기도 전에 버스 문이 닫혀버린 것이다. 여성은 아이가 혼자 내렸다고 버스를 세워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버스 기사는 이를 무시하고 운전을 계속했다. 심지어 아이 엄마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2017년 9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목격담이 가져온 사회적 파장은 컸다. 여론은 버스 기사의 무책임한 처사에 분노했다. 서울 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에는 해당 기사를 처벌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쳤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건대 240번 버스 사건’은 가짜였다. 서울시도 CCTV 확인 결과 버스 기사의 위법 행위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차량 번호 등이 기재되었던 까닭에 사람들은 이를 진짜라고 믿었다. 잘 만들어진 거짓말이 아무 죄 없는 노동자를 잡을 뻔했던 것이다.
지난달 19일 밤 인터넷을 달구었던 ‘3선 의원 연루설’은 이 사건과 닮았다.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20대 교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에서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온갖 군데서 관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특히 ‘3선 의원이 연루되어 있어 사건이 은폐되고 있다’는 주장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 때문에 애꿎은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만 밤새 뭇매를 맞았다. 사건은 다음 날 아침 한 의원이 “해당 학교에 다니는 손주가 없다”고 밝힘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사람들은 왜 분노하는가? 아마 이 사회의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 때문일 것이다. 서이초 사건만 보더라도 3선 의원의 막강한 권력이 진상 규명을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다. 공권력은 믿을 수 없고, 법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니 우리가 대신 나서자는 것이다. 인터넷을 매개로 뭉친 이들 ‘스몰 시스터(Small Sister)’들은 그렇게 굼뜨고 무능한 ‘빅 브러더’를 대신해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개개인이 자발적 연대를 통해 거대 권력에 맞서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빛이라면 무분별한 폭로와 무고한 이에 대한 마녀사냥은 그림자다. 성별‧세대별‧이념별로 나뉜 온라인 지형은 그런 특성을 더욱 강화한다. 가짜 뉴스 생산자들은 이 빈틈을 파고든다. 정보의 불투명한 부분을 선명하게 채워주고, 대중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진실 사이에 거짓을 섞어 그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준다. 그렇게 부조리한 사회를 바꿔보려는 ‘스몰 시스터’들의 선의는 이따금 사회적 골칫거리가 된다.
하지만 이처럼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개개인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배경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국회‧사법부 등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그 불신이 결코 과장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국민에게 정보가 시원하게 공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긴 어렵고 공무원들은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쁘다. 흉악범, 사기꾼, 투기꾼들이 속 시원히 처벌받았다는 소식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다. 공공기관이 국민을 대할 때 배짱‧무시‧훈계로 일관하다가 사건이 공론화되자 그제야 수습에 나섰다는 뉴스는 예사로 전해진다.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말은 공공기관의 권위적 태도를 바꾸는 ‘마법의 단어’로 불린다.
평범한 국민의 요구를 국가와 정치가 제대로 수용하지 못할 때 가짜 뉴스 생산자들은 고개를 든다. 이런 때일수록 공권력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법은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민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줘야 할 책임도 결국은 이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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