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반도체장비 유입, 韓-中만 줄었다… 공급망 재편 타격

박현익 기자 2023. 8.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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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에 투자 소외된 한국]
〈上〉 미국發 공급망 재편 명암
美-日-대만으로 장비 유입 집중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짓고 있는 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 현장. TSMC 제공
그레그 애벗 미국 텍사스 주지사는 지난달 11일(현지 시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삼성이 투자하는) 170억 달러(약 22조 원) 규모 반도체 공장은 텍사스 역사상 가장 큰 외국인 직접투자”라며 이날 주의회를 방문한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 등을 환영했다. 그보다 한 달여 전인 6월 7일 가바시마 이쿠오 일본 구마모토현 지사는 대만 TSMC의 구마모토현 2공장 검토 소식에 “꿈만 같은 일이 실현되면 기쁠 것 같다”며 “구마모토 이름이 나온 것만으로도 좋은 징조”라고 반색했다.

미중 경제갈등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하면서 전 세계 반도체 산업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일본, 대만 등과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정작 투자 대상국에서는 소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본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유엔 무역통계를 분석한 결과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지난해 반도체 장비 수출액 합계는 791억2000만 달러(약 103조 원)로 전년 대비 2.9% 증가했다. 반도체 장비 수출입액은 신공장 및 증설 투자와 직결돼 국가별 투자 집행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다. 3대 반도체 장비 수출국은 글로벌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데 대부분 반도체 생산 강국인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5개국으로 유입된다.

한국의 지난해 반도체 장비 유입액은 166억4105만 달러(약 21조7000억 원)로 2021년 186억9000만 달러 대비 20억4895만 달러(11.0%)가 줄었다.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는 중국(―18.7%)만큼은 아니지만 공급망 재편 이후 오히려 역내 투자 유치가 뒷걸음질 친 것이다.

대만은 같은 기간 13.0% 증가하며 반도체 장비 유입액 1위 국가(222억1383만 달러)로 떠올랐다. 공급망 재편을 계기로 ‘반도체 부활’을 본격 추진하는 미국과 일본도 각각 25.2%, 17.5% 증가했다.

韓, 반도체 해외사업 차질-국내투자 위축… 대만, 투자 늘려 격차 확대

한국, 지난해 장비 수입 비중 줄어
美, 칩스법 앞세워 투자 증가율 1위
韓 메모리 불황 길어지며 시름
삼성 용인 클러스터 구체 계획 못내

‘반도체 장비 3대 수출국’인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글로벌 수출액 중 대(對)한국 수입 비중은 2021년 24.3%에서 지난해 21.0%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대만은 25.6%에서 28.1%로 오르며 중국(27.6%→21.8%)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미국은 7.0%에서 8.5%로, 일본은 3.2%에서 3.7%로 확대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7일 본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유엔 무역통계를 분석한 결과 반도체 신규 투자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표 기업들이 중국 내 사업에 막대한 차질을 입고 있는데 자국 내 투자까지 위축되고 있다. TSMC를 앞세워 세계 각지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대만이 자국 산업 영향력을 함께 키우는 것과는 대조된다.

● 투자 규모는 대만이 1위, 증가 속도는 미국이 1위

대만은 최근 몇 년간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작업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미국에서 2024년을 목표로 추진하던 애리조나 공장 가동을 최근 2025년으로 연기했다. 대외적으로는 숙련공 부족을 원인으로 내세웠지만 업계에서는 제조 역량이 급격히 미국으로 옮아가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TSMC는 일본 투자도 첨단 공정(선단 공정)이 아닌 범용 제품 생산(성숙 공정)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3월 대만 신주 지역에 80조 원 규모의 2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 공장 설립에 착수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TSMC는 이미 파운드리 1위로 시장 내 입지가 탄탄한 데다 새로운 노동환경 적응 비용을 생각했을 때 해외 진출이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일본도 세계 최대 제조강국 중국이 흔들리는 틈을 타 과거 영광 되찾기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투자 규모로는 대만이 가장 크지만 증가 속도는 미국이 가장 빠르다.

미국은 527억 달러(약 68조7000억 원)를 들여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칩스법’을 앞세워 투자 유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인텔은 오하이오와 애리조나에 총 500억 달러 규모로 공장을 짓고 있고, 마이크론은 뉴욕에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입해 대규모 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TSMC도 각각 텍사스와 애리조나에 170억 달러, 400억 달러 규모로 파운드리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TSMC가 약 11조 원을 들여 구마모토 제1 공장을 짓고 있다. 일본 정부는 총 투자액의 40%에 달하는 4조7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TSMC는 최근 일본 내 두 번째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하며 이를 위한 보조금 등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아울러 미국 IBM과 손잡고 소니, 키옥시아, 소프트뱅크 등으로 구성된 반도체연합 ‘라피더스’를 중심으로 제조업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 韓 공동화, 작년보다 올해 심화 우려

반도체 업계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이 올해 더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앞서 현지에서 착공에 들어간 기업들이 하나둘 기초 건설 공사를 마친 상태”라며 “올해는 실제 가동 준비를 위한 장비 반입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단계”라고 전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로 인해 불가피하게 무게중심이 바깥으로 이동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메모리 업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침체기가 길어지며 감산이 좀 더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액을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2분기(4∼6월) 실적을 발표한 지난달 “하반기 재고 정상화를 위한 생산량 조정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2042년까지 300조 원을 들여 경기 용인시에 조성하기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도 구체적인 팹(공장) 설립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대단지 운영을 위한 전력 문제만 해도 송전탑 설치에 대한 주민 반대 등 각종 변수가 산재해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공장은 이르면 내년 가동을 목표로 다들 짓고 있지만 국내는 아직까지 실체가 있는 신규 계획이 사실상 지금 전무하다”며 “공급망 내 한국의 영향력이 향후 몇 년간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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