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폐광지역 리포트] 25. 폐광 이후 생존을 건 3·3 투쟁

김정호 2023. 8. 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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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혐오시설 유치도… 주민 뭉쳐 폐특법 단초 마련”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일자리·주거시설 사라져 경제붕괴 가속
고한·사북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 발족
개발촉진지구 지정 등 ‘3·3 합의’ 이끌어
강원랜드 등 대체산업 발굴 주민 숨통
▲1993년 7월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를 비롯한 폐광지역 주민들이 고한, 사북, 남면 주민 생존권 찾기 궐기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비경제탄광을 폐광하고 경제성 있는 탄광만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1989년부터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은 강원도내 탄광지역을 한 순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탄광이 유일 산업이던 강원도내 탄광지역의 경제는 탄광이 문을 닫자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시 탄광지역은 폐광 이후 대체산업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폐광 이후 광부들이 일할 일자리는 커녕 대부분 사택에 거주하고 있던 광부들을 위한 주거시설조차 없었다. 당장 일자리와 살 곳을 잃어버린 광부와 그들의 가족들은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인구 이탈과 지역경제 붕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더 이상 이를 지켜만 볼 수 없다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1994년 2월 고한·사북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대정부 투쟁에 들어갔다. 폐광으로 무너지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역주민이 주도로 상가 철시, 자녀 학교등교 거부, 삭발·단식투쟁을 이어나갔다. 같은 해 12월 20일 고한·사북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는 청와대 등에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등을 내용으로 한 건의서까지 보냈다.

김태호 위원장

김태호 고한사북남면신동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이하 공추위) 위원장은 당시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건의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김태호 공추위 위원장은 “다른 지역에서는 혐오시설이자 공해시설이라며 반대하는 핵폐기물 처리장, 화력발전소, 교도소 등을 지역에 유치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다”며 “주민들의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요구는 지형적 조건 때문에 무산됐으나 도내 폐광지역의 절박한 처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말했다. 이러한 요구에도 제대로 된 정부의 대책이 나오지 않자 다음해인 1995년 2월부터 공추위를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등 대정부투쟁은 더욱 거세졌다. 당시 정선군의원들과 성희직 강원도의원, 지역 이장 및 의용소방대원까지 사퇴서를 제출하는 등 지역사회 전역에서 폐광지역을 살리기 위해 투쟁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정부는 제2의 사북사태를 우려하면서 통상산업부 대책회의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1995년 2월 고한사북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를 비롯한 주민들이 탄광지역 생존권확보 주민 궐기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결국 1995년 3월3일 정선 사북읍사무소에서 주요 탄광지역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하고 석탄생산량 170만t을 유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른바 ‘3·3 합의’ 5개 조항을 합의했다. 당시 합의안 중 ‘폐광지역개발촉진특별법’ 제정약속도 있었는데 이는 현재 이른바 ‘폐특법’으로 불리는 ‘폐광지역 개발자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단초가 됐다. 1995년 11월 30일 폐특법은 국회를 최종 통과했고 이어 이듬해인 1996년 4월 6일 폐특법 시행령이 공포됐다. 폐광지역은 이 특별법에 근거해 폐광에 따른 대체산업 일환으로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를 정선에 설립했다. 김태호 공추위 위원장은 정부의 잘못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시행과정 속 기존 탄광에서 일했던 광부들이 지역을 떠나는 걸 막지 못하는 등 아쉬운 점이 너무나 많았지만 3·3 합의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힘이 모여 무너져 가던 폐광지역의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성과가 나타났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기 이전인 1988년 167개에 달했던 강원도내 탄광 수는 시행이 한창 진행되던 1995년 8개까지 급감했는데 이때 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덩달아 일자리를 잃었다. 1988년 도내 탄광노동자는 총 4만4192명이었는데 1995년 1만305명으로 급감했다. 일자리를 잃은 광부와 그들의 가족은 지역을 떠나게 됐고 폐광지역의 인구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1988년 강원도 전체 인구 170만3905명 중 약 25.9%인 44만1370명이 거주하고 있던 도내 탄광지역 4개 시군(정선, 태백, 영월, 삼척)의 인구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첫 해인 1989년 3만914명이 감소한 41만456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탄광 지역 4곳을 제외한 도내 타 시군의 인구는 1880명이 감소한 것에 그쳤다. 이후 2000년에는 23만8165명, 2022년 17만5542명까지 줄어들었다.

김태호 위원장은 “애초에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전에 대체 산업을 육성하거나 거주지를 마련하고 진행했으면 폐광지역이 이 정도까지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이런 부분이 너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3·3 합의까지 이끌어 내는데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아 이뤄냈다는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호



1995년 3·3 합의 전문

1. 고한, 사북지역을 포함한 주요 탄광지역을 ‘지역균형개발 및 중소기업육성에 관한 법률’에 의한 개발촉진지구로 조기 지정한다.

2. 주요 폐광지역을 고원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폐광지역 개발촉진 특별법’을 제정함과 아울러 통상산업부에 ‘폐광지역 개발 촉진 지원단’을 즉시 설치하여 강원도가 의뢰한 연구용역의 결과를 참조하여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 추진토록 한다.

3. 현재 추진하고 있는 탄광지역 6개년 계획(92~97)을 보완하여 남은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차질없이 추진한다.

4. 앞으로 석탄감산은 불가피하나 그 속도를 적절하게 조절해 나가면서 적정 생산규모를 계속 유지해 나갈 계획이며 고한, 사북지역의 경우 석탄생산량이 중장기적(향후 5년)으로 연간 170만t 수준으로 유지토록 한다. 다만 대체산업유치로 고용이 창출될 때에는 그에 상응하여 감산을 한다.

5. 주요탄광지역에 대체산업 창업을 촉진하기 위하여 투자비 50% 수준을 장기저리로 융자하는 지원제도를 마련한다. 고한, 사북의 경우 현 석탄생산규모(200만t)와 향후 생산규모(170만t)의 차이에 해당하는 금액(약 240억원)을 융자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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