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도발에 ‘힘에 의한 평화’ 실행 결기 보여야[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핵어뢰를 비롯해 화성-17형 ‘괴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화성-18형 고체연료 ICBM, 전술핵 투발용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등이 총동원됐다. 강순남 북한 국방상은 “우리의 무력행사가 미국과 대한민국 방어권 범위를 초월할 것”이라며 “미 본토를 전략핵으로 뒤덮겠다”고 협박했다. 서울과 워싱턴을 동시에 핵으로 때리겠다고 핵전쟁 엄포를 놓은 것이다. 열병식 주석단의 김정은 좌우에는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을 포진시켜 한미의 확장억제(핵우산) 강화를 맞받아치는 ‘북-중-러 밀착’도 연출했다.
군 관계자는 “열병식의 핵심 타깃은 사실상 한미동맹이었다”고 말했다. 미 전략자산 전개를 빌미로 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미사일 연쇄 도발도 핵 기습 공포감을 고조시켜 한미동맹을 흔들려는 저의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핵 무력이 ‘레드라인’(금지선)에 다다른 만큼 외교적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핵무기 동결과 대북 제재 완화를 맞바꿔 북한의 ‘핵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의 배경엔 북한의 핵 무력이 고도화될수록 ‘핵 사용 문턱’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 도박’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필자는 본다. 핵무기고를 늘려가는 것과 실전의 핵 사용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핵무기의 실전 사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일본 원폭 투하가 유일하다. 이후 일촉즉발의 쿠바 미사일 위기 등 미소 간 ‘냉전 핵 대결’을 거쳐 지금까지 핵보유국이 관여한 모든 전쟁은 재래식 전쟁으로 종결됐다.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핵단추’를 누를 경우 초래될 후과를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음을 핵보유국들이 엄중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런 교훈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미를 핵으로 공격하면 김정은 정권엔 종말 외에 다른 선택지를 상상할 수 없다. 가공할 핵 보복 등 미국의 확장억제가 가동되면 북한 체제는 자멸의 길로 직행할 것이다. 김정은이 핵에 매달릴수록 ‘핵 옵션’은 줄어들고, ‘핵 보복 딜레마’는 커지는 역설적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핵 무력을 뒷배 삼아 더 대담하고 예측불허의 재래식 도발을 획책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반도 최대 화약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모종의 기습 도발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해 NLL은 실질적 해상 군사분계선이고, 그 일대 서북도서는 북한의 목구멍과 옆구리를 겨눈 ‘비수’와도 같은 존재다. 북한 특수부대의 서울 등 수도권 침투를 저지하고, 심장부(평양)를 직격할 수 있는 서해 NLL 일대의 한국군 전력은 김정은에겐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숱한 도발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도발, 연평도 포격전 등 유례없는 고강도 도발이 모두 서해 NLL 일대에서 터졌다. 군 안팎에서는 김정은이 한국 정부의 대북 원칙 노선과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를 트집 잡아 ‘제2의 천안함·연평도 도발’ 같은 벼랑 끝 대결도 불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상적 도발 공세로 한반도 전쟁 위기를 극대화한 뒤 모든 책임을 한미에 전가하는 시나리오다.
더욱이 2018년 남북 정상 면전에서 양측 국방 수장이 서명한 9·19 남북 군사합의는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사문화된 것과 진배없다. 김정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협정이나 합의도 휴지 조각으로 내팽개치는 북한의 호전성을 군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핵 위협을 앞세운 북한의 도발에 굴종적 태도를 보이거나 반격을 머뭇거리면 김정은 정권에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는 격이 될 것이다. 그 끝은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 인질’로 영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
군은 항재전장(恒在戰場)의 각오로 임전 태세를 다잡길 바란다. 도발하면 단호하고 강력한 응징으로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핵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이 절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북한의 도발 전략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과 태세를 확고히 하는 게 필수적이다. 더 정교한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으로 확장억제의 실행력 강화 등 한미 간 통합억제 체계를 공고히 다지는 것도 선결 과제다. 북한이 도발하면 ‘힘에 의한 평화’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결기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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