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순직’ 문책 범위 놓고 윗선 개입 의혹
사단장 등 8명 ‘과실치사’ 적시·결재 받았는데 하루 만에 번복
수사단장 측 “수정 명령 문서 없어”…국방부 “개입 사실 아냐”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보고서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승인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장관 ‘윗선’ 개입 주장도 나온다. 국방부는 이 장관이 결재한 것은 수사 내용에 대한 것일 뿐, 보고서에서 구체적인 혐의 사실을 빼라는 지시는 이튿날 새롭게 내린 것이라고 맞섰다. 이 장관의 새 지시에 항명했다는 혐의로 보직해임된 해병대 수사단장 측은 이 장관의 수정 명령이 담긴 문서가 없다며 “항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수사단장 A대령의 변호인 김경호 변호사는 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라는 국방부 장관의 7월30일자 원명령이 존재한다”며 “(이 장관의 새 지시가 담긴) 수정 명령은 문서로 존재하지 않아 항명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달 30일 이 장관에게 책임자 범위와 각각의 혐의 사실이 담긴 수사 결과 보고서를 보고했고 결재를 받았다. 여기에는 채 상병이 소속된 1사단장을 비롯해 지휘계통에 있는 총 8명의 과실치사 혐의가 적시됐다고 한다. 해병대는 다음날인 31일 이 내용을 국방부 기자단에 브리핑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31일 이 장관은 돌연 해병대 측에 수사 결과 이첩을 보류할 것을 지시하고 국외 출장을 떠났다. 이 장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지난 1일 수사 결과 자료에서 모든 혐의 사실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는 게 A대령 측의 주장이다.
A대령 측은 이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이 담긴 문서가 존재하지 않고 혐의 사실 삭제는 이 장관의 명령이 아니어서 지난 2일 경찰 이첩을 했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를 군기 위반으로 보고 2일 경찰로부터 사건을 회수했고, 해병대 사령관은 A대령을 보직해임했다.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이 항명을 했다며 압수수색했고 A대령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검찰단은 수사단의 자료에서 혐의 관련 내용을 삭제한 뒤 다시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겠다는 방침이다.
30일 이 장관이 결재한 뒤부터 31일 이첩 보류를 지시하기까지의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책 범위를 사단장급까지 넓힌 데 동의하지 않는 ‘윗선’ 지시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3일 기자와 만나 “이 사람 저 사람 다 책임을 지면 (해병대는) 어떡하려고 그러냐는 문제의식이 (국방부 내부에) 있었다”며 사안의 본질이 문책 범위임을 시사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윗선 개입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 장관이 지시를 하루 만에 번복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전 대변인은 “장관이 30일 결재한 것은 수사 내용이다. 혐의자들과 혐의 사실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31일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변인은 이 장관의 수정 명령이 담긴 문서가 없다는 A대령 측 주장에 “수정 명령이 없으면 해병대 사령관은 A대령을 왜 보직해임했나”라며 “사령관은 상부의 ‘이첩 보류’와 ‘혐의사실 삭제’ 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했으니 여기에 따르지 않은 A대령을 보직해임한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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