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탈락, 조별리그 탈락…체면 구긴 강자들, 랭킹은 숫자일 뿐

1·2위 미국·독일 ‘광탈’…여자 월드컵에 부는 ‘FIFA 랭킹 무용론’

미국의 메건 라피노(왼쪽)가 6일 스웨덴과의 2023 국제축구연맹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국과 조별리그 H조 최종전에서 찬스를 놓친 뒤 아쉬워하는 독일의 알렉산드라 포프. 멜버른·브리즈번 | AP·로이터연합뉴스

독일 첫 조별리그 탈락 이어 ‘대회 3연패 도전’ 미국도 16강서 고배
강호 캐나다·브라질도 충격적 부진에 짐 싸…랭킹 산정 신뢰도 추락

국제축구연맹(FIFA)이 각국의 순위를 매기는 랭킹제가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의 숱한 이변에 체면을 구겼다.

여자 축구 최강으로 군림했던 미국이 FIFA 랭킹에 실망을 일으킨 주역이다. 1위 미국은 지난 6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16강전에서 스웨덴과 전·후반 90분을 넘어 연장까지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5로 졌다. 미국은 역대 여자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16강에서 탈락했다.

월드컵 3연패를 노리던 미국의 도전이 중단된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상대인 스웨덴 역시 3위의 강호일 뿐만 아니라 승부차기 자체가 러시안 룰렛에 빗댈 정도로 변수가 많다.

그러나 미국은 조별리그부터 순위가 낮은 팀들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국은 1차전 상대인 베트남(32위)에 3-0으로 승리했을 뿐 2차전 네덜란드(9위)와 3차전 포르투갈(21위)에 연속 비기면서 힘겹게 16강에 올랐다.

2위 독일도 FIFA 랭킹 무용론에 힘을 보탠 것은 마찬가지다. 독일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모로코(72위)를 6-0으로 무너뜨렸지만, 조별리그 2차전에서 콜롬비아(25위)에 1-2로 패배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17위)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1-1로 비기며 조 3위에 그쳐,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FIFA 랭킹 10위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7위 캐나다와 8위 브라질도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겼다. 캐나다는 조별리그 B조에서 순위가 가장 낮은 나이지리아(40위)와 0-0으로 비기는 바람에 3위로 밀려났고, 브라질 역시 F조에서 자메이카(43위)와의 0-0 무승부에 발목이 잡혔다.

FIFA 랭킹이 신뢰도를 잃은 원인은 두 가지 측면으로 풀이할 수 있다. FIFA는 A매치의 승패와 상대팀과의 전적, 경기의 중요도 등을 감안해 매달 순위를 매기는데, 여자 축구는 A매치 기간에 친선전이 많지 않아 정확한 평가가 어렵다. 메이저 대회가 없었던 2021년 기준으로 비교하면 한국은 남녀가 각각 10경기와 8경기의 A매치를 치렀다.

또 여자 축구에서 요구되는 힘과 체력의 수준이 달라진 것도 랭킹제가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과거 기술이 뛰어난 팀들이 득세했다면, 이번 대회에선 순발력과 주력, 완력, 높이 등 ‘힘’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2019년 프랑스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도 이 부분에서 한계를 경험했다.

다만 FIFA 랭킹 무용론은 남은 대회 성적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월드컵이 8강으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선전하고 있는 스페인(6위)과 네덜란드(9위), 스웨덴 등이 우승컵까지 들어올린다면 극단적인 무용론보다는 랭킹제 보완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