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서현역 현장 찾은 시민들도 ‘눈물’
사망 60대 피해자 추모 발길
길가엔 꽃·커피 등 늘어서
흉기난동범은 22세 최원종
‘터미네이터’의 AI 이름으로
커뮤니티 활동명도 바꾸고
영화 속 날짜 따라 범행까지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저희만 살아서….”
7일 오전 땡볕이 내리쬐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고가차도 위. 녹색 울타리 아래에는 흰색 꽃다발 30여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꽃다발 앞에는 커피와 과자, 빵도 있었다. 그 옆에는 국화꽃 여러 송이가 담긴 파란색 바구니가 놓였다. 바구니에는 ‘조문 부탁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곳은 지난 3일 ‘분당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22)이 차량을 몰고 돌진해 행인들을 들이받았던 현장이다. 당시 5명이 차에 치었고 이 중 4명이 부상을 당했다. 부상자 중 1명이었던 A씨(60대)는 병원 치료를 받다 사고 발생 나흘째인 지난 6일 숨을 거뒀다.
A씨는 그날 남편과 함께 외식하기 위해 걸어가다가 이 차량에 치여 변을 당했다.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A씨를 추모하는 공간에 놓인 꽃다발 사이에는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들이 눈에 띄었다. 남편이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에는 “착한 당신!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요.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편지에는 “너무 너무 사랑했던 언니. 언니랑 같이했던 나날이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정말 죄송해요”라고 쓰여 있었다.
시민들은 추모 공간 앞을 지나면서 커피 한 잔을 내려놓거나 묵례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바구니에 담긴 꽃을 꺼내 헌화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인을 기억하는 이웃의 발길도 이어졌다. A씨 부부와 이웃으로 지내면서 10년 이상 알고 지냈다는 신모씨(55)는 “(A씨가) 동네 통장님이었다. 항상 주변에 베풀던 부부였다”면서 “왜 좋은 분들이 이렇게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남편분이 아내를 너무 사랑하셨는데 충격이 클 것 같아 걱정”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피의자 최씨는 지난 3일 오후 5시59분 서현동에서 차량으로 인도에 있는 시민들을 들이받은 뒤 백화점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흉기를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의 범행으로 A씨가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최씨는 지난 5일 구속됐다.
최씨는 프로그래밍을 주제로 하는 한 커뮤니티에서 주로 활동하며 반사회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인공지능(AI)에 심취해 있었는데, 올해 초에는 활동명을 ‘SKNT 설계자’(스카이넷 설계자)로 바꿨다.
스카이넷은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AI 슈퍼컴퓨터로,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는 프로그램으로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영화 설정상 스카이넷은 최씨 범행일(8월3일) 다음날인 8월4일에 가동된다.
경찰은 이날 오후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최씨의 이름과 나이 등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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