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조항 꼼수로 전관 챙긴 LH…‘이권 카르텔 근절’ 실효성 있나

심윤지 기자 2023. 8. 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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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수의계약 제한’ 무색
퇴직자 업체, 사업 다수 따내
LH “사실상 공모” 예외 주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주택 설계 업무를 담당하다 2018년 본부장급(1급)으로 퇴직한 A씨는 2019년 1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B설계사무소를 차렸다. 개업 후 첫 2년 동안 모두 114억원 규모의 LH 설계용역 3건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그중에는 ‘철근 누락’ 단지 중 한 곳으로 알려진 수원당수 A-3BL 공동주택 설계용역도 포함됐다.

원칙대로라면 B사무소는 2023년까지 LH가 발주하는 설계용역을 수행할 수 없다. 2021년 7월 시행된 LH 혁신안에 따라 ‘퇴직한 지 5년이 안 된 전관이 대표나 임원으로 있을 경우 수의계약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임직원 토지 투기 의혹을 계기로 LH의 고질적인 ‘전관예우’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자 마련된 대책이다. 하지만 B사무소는 혁신안이 시행된 2021년 7월 이후로도 3건의 LH 용역을 더 따냈다. 2021년 고양장항 S-2BL 공동주택 설계용역(25억원), 2022년 인천계양 A-1BL 공동주택 설계용역(18억원), 2023년 서울 쌍문역동측 도심 공공주택 복합지구 기본 설계용역(18억원) 등을 수의계약으로 수주했다.

LH는 문제의 계약이 용어만 수의계약일 뿐 공모를 통해 선정됐기 때문에 혁신안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LH 관계자는 “설계용역의 경우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상 경쟁에 의한 공모 절차를 거쳐 우선 적격 당선자를 선정하고, 이후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라며 “법상 용어가 수의계약으로 되어 있어 생긴 오해일 뿐 일반적으로 말하는 ‘특혜성 수의계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모 방식으로 용역사를 뽑는다 해도 LH 공사로 ‘먹고사는’ 설계업체들의 ‘풀’이 정해져 있는 데다 비교적 규모가 큰 업체들은 심의위원과의 학연 등을 내세워 이들을 ‘사전 관리’하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LH 설계공모 외부 심의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는 한 건축학과 교수는 “전관 영향력을 줄이겠다며 외부 심사위원 수를 늘리고 투표제를 도입하니 작은 업체들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해 각사가 잡을 수 있는 심사위원의 표 계산을 하는 전략이 새롭게 생겨났다”고 전했다.

LH는 ‘이권 카르텔 근절’을 위한 혁신안을 10월 중 발표할 계획이지만, 각종 예외 조항이 존재하는 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철근 누락 단지 중 한 곳인 파주운정 A34블록 아파트 감리를 맡은 C엔지니어링은 ‘2000만원 미만 계약’이라는 이유로 최근 경쟁 기업 없이 LH 사옥 에너지 진단 용역을 따내기도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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