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 없는 사람의 풍경, 내가 떠나는 이유입니다 [책방지기의 서가]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책방지기 4년 차. 어느새 이리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깊은 골짜기 책방에서요. 주말이면 그래도 북적이기도 하는 이곳은, 동네분들보다 여행자들이 더 많이 찾는 곳입니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분들. 어찌 알고 오시는 걸까. 엉거주춤 인사를 건네고는 할 말을 고릅니다.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냥 빈 공책에 낙서를 가득 채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불쑥 손님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오면 "여행 오셨나 봐요"라며 말을 띄워 봅니다. 그러면 여행자들의 예의 그 환한 미소가 답으로 돌아옵니다.
그런 그들에게 슬쩍 권해보는 한 권의 책, 바로 추효정 작가의 '나의 친애하는 여행자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봤어. 미국은 양부모로부터 받은 거지만 아일랜드는 친부모로부터 받았다기보다 태생과 동시에 내게 주어진 거였잖아. 어차피 여권상 아일랜드가 국적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따진다면 그게 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크리스는 자신만의 근본을 만들어 근본으로 돌아갔다. 크리스다운 결정이었다. 앞으로 그의 근본이 낯선 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혹여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크리스다운 생각이 낯선 이들이 놓치고 있을지 모를 인식의 근본을 되찾아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로 인한 내 인식의 확장은 결국 모든 것과 연결되어 뻗어 나갔고, 이렇게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200쪽)
'나의 친애하는 여행자들' 안에는 작가가 만난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페이지마다 사람으로 기억되는 단단하고 멋진 시간이 펼쳐집니다. 여행자 '나'가 다른 여행자 '너'를 만나 나누는 대화는 얼마나 매혹적인지 모릅니다. 특히 세 챕터나 차지하는 여행자 크리스와 나누는 대화는 '나'의 들러붙은 고질적 편견을 부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행자 '나'도 그걸 읽는 '나'도 결국에는 한 뼘 자라난 '나'가 있을 뿐이죠. 친애하는 여행자들이 아니었더라면 여행하는 가운데 얻을 수 있는 건, 그저 책에서 읽었던 것들을 확인하며 만족해하는 정도에서 그쳤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일은 희박했겠죠. 여행을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추효정 작가의 여행 목적은 확실히 '사람'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멋진 건축물을 보거나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거나 시장 구경을 하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의 엮임이, 섞임이, 나눔이 더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그 아름다움의 전선을 너무 과하지 않게 전해 주는 여행자의 말은 마치 다큐멘터리 영상을 글로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은은하게 몰려오는 뭉클함도 있고요. 그래서일까요. 그동안 만났던 여행자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또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여행자였을까, 하는.
무더위의 8월. 여름방학과 여름휴가가 몰려 있는 뜨거운 달입니다. 어디로 떠날지, 무엇을 할지 이미 계획을 다 세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 휴가 기간을 쪼개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소박한 배낭에 짐을 꾸리면서 마음이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단 하룻밤이지만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될 다른 여행자들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태어나 처음 만나는 이들. 그들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듣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이는 분명 '나의 친애하는 여행자들' 덕분인 듯합니다. '나만의 세상'이 얼마나 작고 얕은지, 그것을 실감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이제 여행자가 되실 당신께 여행의 목적이 '사람'인 여행자의 시선을 가져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새롭게 띄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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