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간디와 목화
목화 하면 문익점이 생각난다. 붓대 속에 씨앗을 숨겨온 700여년 전의 드라마틱한 사건. 덕분에 우리는 1000년 넘게 한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목화는 누르스름한 꽃을 피우지만, 꽃에 관심 두는 이는 없다. 그보다 씨를 둘러싼 솜이 중요했다. 목화를 면화(棉花), 또는 초면(草綿)이라 부르는 이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목화밭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쩌다 카페에서 장식용으로 꽂아 놓은 마른 목화송이에도 감개무량하다.
목화는 땀의 작물이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목화밭에서 호미질해본 사람이 이제 몇이나 되랴. 바다 건너 미국의 목화밭은 노예들의 노역장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섬유 산업 발전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노동에 의존해 발달했다. 노예무역이 끝나기 전인 19세기 초반까지 아프리카 노예들은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으로 끌려왔다. 하디 레드베터 작품으로 미국 록밴드 CCR 등이 부른 ‘Cotton Field(목화밭)’라는 노래는 흥겨운 리듬 때문에 흑인들의 고달픈 삶을 노래한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현재 목화 생산량은 중국과 인도가 앞을 다툰다. 목화의 원산지는 인도 서북쪽 평원지대로, 기원전 5500여년 유적지에서 목화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목화재배의 역사는 무려 7500년이 넘는다.
어렸을 때 보았던 목화 관련 사진 한 장이 오래 기억된다. 물레를 돌려 목화실을 뽑던 간디의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윗옷을 벗은 모습이 깊이 각인되었던 때문일까. 그때는 검소한 정치인 정도로만 생각했었지, 그 사진 속에 숨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 그는 영국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흑인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귀국 후에는 제국주의의 야욕을 비난하며 민족운동에 앞장섰다. 영국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도 반납하고, 영국 제품 불매운동을 펼쳤으며, 비폭력 무저항주의에 앞장섰다.
간디는 직접 물레를 돌려 목화실을 뽑아 인도 전통 직물인 카디(Khadi)를 짰다. 그것이 인도 독립의 불씨가 된다는 것을 호소하면서 말이다. 그에게 물레는 직물을 짜는 도구일 뿐 아니라 비인간적이며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반기를 든 상징물이었다.
생전에 간디는 “기쁨은 투쟁 속에, 노력 속에,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고통 속에 있다”고 했다. 간디의 목화는 저항의 작물이었다. 부드럽지만 끈질긴….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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