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묻지마 범죄, 사회적 고립을 치유해야

기자 2023. 8. 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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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처음 미국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갔을 때의 일이다. 미국 대도시에 있는 대학들은 거의 예외 없이 범죄의 위협 속에 살아간다. 내가 진학한 대학이 대표적 사례였다. 학교를 중심으로 가로세로 각 10블록 정도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이고, 이 경계선을 넘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신입생들은 누구나 새로운 학교생활의 설렘과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오리엔테이션에 부총장이 등장해 캠퍼스 안전에 대한 특강을 했다. “거리를 걷는데 누군가 따라온다면?” 신입생들이 귀를 쫑긋했다. “…뛰세요!” 다들 맥없이 웃었다. 자조 섞인 웃음이었다. 범죄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기껏 대책이 뛰는 것밖에 없다니. 부총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계속 따라온다면?” 신입생들이 또 귀를 쫑긋했다. “…계속 뛰세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부총장은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인 가로세로 10블록 안에서도 일주일이면 열몇 건씩 총기사고가 터졌다. 대학신문에는 매주 지난 일주일간의 범죄지도가 실렸고, 총기가 연루된 사고는 검은색으로 표시돼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서 하루가 멀다고 총기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매주 확인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아 내가 그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해 갔을 뿐, 목숨을 위협하는 범죄는 늘 바로 옆에 있었다. 밤거리에는 가급적 나가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때면 거리에서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인구 300만의 도시에서 어느 해인가는 1년에 총 맞아 사망한 사람이 1000명을 넘었고, 그해 마지막 날 지역신문의 헤드라인은 ‘킬링 필드’였다. 인구 1000만명의 서울로 치면 연간 3000명 이상이 총 맞아 죽는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전쟁 중이나 다름없다. 칼럼을 쓰면서 좀 나아졌나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해엔 750명이었다고 한다. 학교생활은 보람 있었지만 끝없는 긴장 속에 항상 뒤꿈치를 들고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벗어나려면 부자가 돼 안전한 부자동네로 이사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른바 ‘주거분리’ 현상이다.

‘묻지마 범죄’가 국민들의 일상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다. 최근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경찰이 며칠 사이에 찾아낸 온라인상의 살인예고 글만 50건이 넘는다고 한다. 상황이 급박하니 우선 할 수 있는 일은 치안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특별치안활동을 발령했다. 세계 최고로 안전하다고 자부했던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특별치안활동이 발령된 것이다.

급박한 흉기소지 상황에서는 경고사격 없이 실탄사격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범죄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의 수위를 높이는 것은 일정한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공권력에 대한 무시나 심지어 폭력을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가 만연하는 상황에서 경찰의 정당한 물리력 행사에 대한 면책 범위를 넓히되 그 요건을 엄밀하게 규정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은 좌절과 사회적 고립을 찾아내 치유하는 노력이다. 그동안 일어난 묻지마 살인 사건들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좌절과 사회적 고립이다.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비슷한 사건들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가족·친구·동료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 사람,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엇인가를 성취하려 시도하지 않는 사람, 학교·직장·동호회·종교 등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는 사람들이 취약하다. 범죄학·심리학·사회학 등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경고해왔다.

1인 가구의 비약적 증가, 공교육 현장에서조차 최소한의 교우관계와 사제관계가 사라지는 현상, 만혼과 비혼을 거쳐 이제는 연애조차 하지 않는 생물학적 고립, 어려울 때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회적 고립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로 나타나는 현상,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찾기를 포기한 청년세대의 증가 등이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들의 좌절과 사회적 고립을 치유해야 한다. 여기에 실패한다면 우리도 미국처럼 부자 되어 이사 가는 방법밖에 없는 사회를 향해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표적 중산층 공간인 서현역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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