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이스라엘의 인공기
집회와 시위에서 국기가 종종 소품으로 쓰인다. 멀리는 1919년 3·1운동 때 만세를 불렀던 사람들이 손에 든 태극기,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이 공수부대에 맞서서 흔든 태극기가 그렇다. 타국 국기가 동원되기도 한다. 이슬람권 국가의 집회에서 서방의 이슬람교 모독에 항의하는 뜻으로 서방 국가의 국기를 불태울 때가 대표적이다. 그에 비해 한국 내 보수단체 집회에 태극기와 함께 등장하는 미국 국기는 동맹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동원된다.
언젠가부터 국내 보수단체 집회에는 성조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국기가 나부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2019년 ‘태극기 부대는 왜 이스라엘 국기를 들었을까’라는 글에서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동경”과 “그 미국의 일방적 지지와 보호를 받는 이스라엘에 대한 부러움도 섞였다”고 쓴 바 있다. 일리 있는 해석이라고 본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 내 정부 비판 시위에서 자국 국기와 함께 타국 국기가 등장했다. 그것은 미국이나 서방 국가 국기가 아닌 북한 국기이다. 지난 7월24일 의회를 통과한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의 사법개편안으로 사법부의 행정·입법부 견제 권한이 약화되는 데 대한 시민들의 반대 시위에서다. 인공기를 들고나온 한 시민은 영자매체인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독재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려고 누이에게 부탁해 알리익스프레스(알리바바 계열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북한 국기를 구했다”고 말했다. ‘반면교사’의 의미를 담았다는 점에서 반감, 동경, 부러움을 표하는 그간의 국기 사용과 다른 활용법이다.
이스라엘에서 인공기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사법부에 SNS 게시글 삭제 판단 권한을 부여한 법안의 의회 논의 당시 시민들이 이를 ‘검열 법안’이라고 비판하며 인터넷상에서 인공기를 올리며 항의한 적 있다. 당시 인공기를 썼던 사람들이 야당이던 네타냐후 지지자들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이스라엘에서 인공기는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를 ‘독재’라고 부를 때 동원하는 유용한 기표가 된 셈이다. 북한, 의문의 1패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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