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피닉스시 폭염담당관이 하는 일

한겨레 2023. 8.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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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의 눈][기후 위기]

연일 폭염이 계속된 지난 3일 대구 중구 공평네거리 도로에서 시민들이 열기로 가득한 도로를 걷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편집인의 눈]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데이비드 혼둘라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폭염담당관’으로 일한다. 공식 직함은 ‘열기 대응 및 완화 책임자’다. 섭씨 43도를 넘는 폭염이 기록적으로 이어진 올여름, 그는 온열환자가 쏟아지는 저소득층 동네에 구급대와 자원봉사자를 급파하고 공공 대피소를 설치하느라 바빴다. 미국에서도 덥기로 손꼽히는 이 도시에서는 거리의 노동자와 노숙자 등이 뜨거운 아스팔트에 화상 입는 일이 많아 응급실 병상이 부족했을 정도라고 한다. 혼둘라 담당관은 그의 활동을 소개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당장의 폭염 대응과 함께, 기후변화로 더 심해지는 무더위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나무를 심고 그늘을 늘리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닉스시 폭염담당관은 기후위기 시대에 정부가 해야 할 두가지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구가열화(global heating)의 결과로 이미 피할 수 없게 된 재난에 적응 (adaptation) 하는 일 과 기후위기 자체를 완화 (mitigation) 하기 위해 대처하는 것이다. 어느 쪽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적응 면에서는 문제가 폭염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여파로 극단적인 폭우와 홍수, 태풍, 산불, 가뭄, 혹한, 폭설 등이 각국에서 ‘사상 최악’의 기록을 거듭하고 있다. 식수난·식량난에 따른 고통과 분쟁, 신종 전염병의 위협, 해수면 상승 등으로 살 곳을 잃는 기후난민도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재난은 하나하나 매우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요구한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사태에서 보듯, 폭염 하나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폭우 때 서울에서 반지하주택 참사를 겪었는데, 올해는 오송 지하차도 침수로 더 큰 희생을 치렀다.

기후위기 완화도 지지부진하다. 2030년까지 2018년 탄소배출량의 40%를 줄이겠다는 국가적 약속(NDC)을 지키려면 경제와 삶의 방식 등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 우선 석탄 등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 체제로 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고,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이다. 기업은 생산·유통 과정에서 에너지를 덜 쓰고 폐기물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내세우면서 실상은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하는 기업도 많다. 건물의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제로에너지건축’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지만, 국내에선 걸음마 수준이다. 공장식 축산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영농으로 농축산업을 개편하는 일, 대중교통과 자전거 중심 이동체계를 확충하는 일 등 과제 목록은 이어진다. 어느 하나 한국이 ‘잘하고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국제 환경단체 등은 한국을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 부른다. 이 부끄러운 이름은 누구 탓일까. 기후 대응 사령탑으로서 정부 책임이 가장 크지만, 언론의 잘못도 작지 않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19년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 기후붕괴, 기후비상으로 표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 등에는 이렇게 기후 상황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정부의 대응을 압박하는 언론이 많다. 반면 한국에는 기후위기를 중요한 의제로 다루지 않거나, 정파적 관점에서 태양광·풍력 확충을 반대하는 등 ‘발목 잡는’ 보도를 하는 언론이 많다.

한겨레는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기후변화팀을 만들었고, 관련된 사안들을 적극적으로 보도해왔다. 그러나 위기의 긴박성에 비추어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다. 무엇보다 관련 보도가 ‘기후 담당 기자들’에게만 맡겨진 듯하다. 크고 작은 선거에서 후보에게 기후대책을 따져 묻고, 국정감사·예산심의 등에서 각 부처의 기후 대응을 집중 조명하는 정치 기사는 왜 보기 어려운가. 대기업 이에스지 보도자료 너머의 ‘실상’을 파헤치고, 에너지·교통·건설·농수축산·제조업 등 산업별 과제와 이행 실태를 점검하는 경제 보도는 왜 드문가. 침수·폭염·산불 등 재난을 따라가는 데 그치는 대신, 반지하주택·지하철·지하차도·공사장·산동네 등 취약지대의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짚고 대안을 내는 심층 연재물은 기대하기 어려운가. 국민의 생사, 경제의 흥망이 다 걸린 이 위기는 언론의 총체적 대응을 요구한다. 한겨레를 포함한 모든 언론, 언론인이 ‘자기 몫의 기후보도’를 감당해야 기후위기 극복의 희망도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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