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처럼 뉴스를 만들 수 있을까요?
[뉴스룸에서][기후 위기]
[뉴스룸에서] 박현철 | 서비스총괄
미국 하와이섬에서 북서쪽으로 1600㎞ 떨어진 곳에 있는 무인도 라이산섬. 생후 6개월 된 아기 새가 백사장에 등대처럼 섰습니다. 몰아치는 비바람과 타는 듯한 더위를 견디며, 3천㎞ 떨어진 사냥터로 떠난 부모를 기다립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바닷새 라이산 앨버트로스인데요. 아기 새는 누가 가져다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마침내 부모 새가 왔고 아기 새에게 줄 먹이를 게워냅니다. 그런데 먹이를 받아먹은 아기 새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구역질하는가 싶더니 이내 숨이 끊깁니다.
다시 백사장을 돌아보니 모래밭엔 새 반, 플라스틱 반입니다. 페트병, 라이터, 병뚜껑…. 조류를 타고 온 것들입니다. 부모 새들이 바다 위에 뜬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새끼들에게 물어다 주고, 이를 받아먹은 새끼가 죽음에 이른 것입니다. 라이산 앨버트로스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지정 멸종위기종입니다.
이 장면은 지난 6월 공개된 넷플릭스 4부작 다큐멘터리 ‘우리의 지구 2’ 속 한 장면입니다. 저는 2018년부터 4년 동안 한겨레 동물매체 ‘애니멀피플’ 팀장이었습니다. ‘인간이 쓰고 버린 플라스틱 때문에 동물들이 죽어간다’는 내용의 기사를 셀 수 없이 읽고 썼습니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충격이었습니다. 집중해서, 감정을 이입하며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라이산섬에 취재를 갔다면 어땠을까요? 운이 좋아(?) 어미가 준 먹이를 받아먹고 쓰러지는 아기새를 봤다면 앞서 묘사한 상황을 앞세운 뒤, 생태학자나 동물학자, 환경운동가들의 설명과 급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폐기량과 멸종위기에 처한 라이산 앨버트로스의 개체 수 등을 덧붙여 기사를 썼을 겁니다. 앨버트로스를 집어삼킨 플라스틱이 머지않아 인간도 집어삼킬 것이라는 메시지도 담아야겠죠. “태평양 무인도 뒤덮은 플라스틱, 앨버트로스의 먹이가 되다” 정도의 제목과 함께. 제가 쓴 기사는 ‘우리의 지구’처럼 독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까요?
미국 뉴욕타임스의 에디터 팀 헤레라는 이미 2017년 “우리의 경쟁자는 워싱턴포스트가 아닌,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한겨레에 이 예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합니다. 경쟁자 넷플릭스가 우리 독자(나 미래 독자)를 빼앗고 있는 건 맞지만, 안타깝게도 넷플릭스와 경쟁하기 위한 한겨레의 역량은 좀처럼 커지지 않았기에 그렇습니다.
특히 기후와 환경, 동물 분야에서 영상의 힘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2017년 동물전문 매체 애니멀피플, 2020년 기후변화팀을 만들었습니다. 독자들 관심사와 지구적 위기 상황의 변화를 비교적 빨리 파악하고 시도한 결과인데요. ‘시작이 반’이라지만 나머지 절반을 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농담입니다만, 환경운동가와 과학자들이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를 걱정하는 것 못지않게, 저는 기후위기와 환경파괴 뉴스를 독자들이 잘 보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독자 탓을 하는 건 아닙니다. 독자들이 잘 보지 않는다는 건,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볼 만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영상 콘텐츠와 문자 콘텐츠의 몰입도 차이가 원인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인력 등 자원이 부족하다는 현실도 원인의 일부겠죠. 우리(언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를 어떤 메시지와 형태로, 어떤 통로(플랫폼)를 통해 전파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일 겁니다. 그 답을 여전히 찾는 중입니다.
극한의 날씨, 새로운 곤충의 출현과 익숙하던 곤충의 급감, 심지어 메이저리그 홈런 수 증가도 기후뉴스인 시대입니다.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환경의 변화는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에 그렇겠죠. 경쟁자에게 독자를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일지 모릅니다. 기후활동가들이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수프를 끼얹고, 로마 트레비 분수에 먹물을 뿌려서라도 상황의 심각함을 알리려는 이유도 인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의 위기를 실감하는 독자들이 많을 줄 압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내 삶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혼란스러운 분들도 많을 겁니다. 알고 있지만 실천을 망설이는 분들도 있겠죠. 이런 답답함과 간절함을 뉴스에 더 담아보겠습니다. 독자를 설득하는 일이 독자를 살리는 일일 테니까요.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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