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의심받는 인간의 가치…공존과 다양성으로 인정받아야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기]
[왜냐면] 김창민 |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인공지능이 나날이 진화하면서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많은 데이터와 경우의 수를 기반으로 판단을 내리는 지적 작업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기 때문에 관련 분야는 예상 밖으로 광범위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예술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예술’과 ‘창의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날이 정교해지는 인공지능 번역은 언어의 장벽이 곧 없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특히 영어를 배우느라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온 국민이 고생하고, 그 비용으로 적지 않은 국력을 소진하는 우리나라에 너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온 국민이 영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국가의 경쟁력은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우선 영어-한국어 번역 인공지능의 개발은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새로운 차원의 국가 인프라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효율만 따지자면 인류는 하나의 언어만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자연어보다는 기계어나 부호를 사용하면 인간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순간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고유성과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인간과 인간의 언어는 기능성과 효율성에서는 컴퓨터 언어나 기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고도의 인공지능이 일반화되면 인간의 가치는 더욱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효율성과 생산성을 우선적 가치로 삼고 그것을 위해 사회를 조직하고,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순간 우리 스스로 인간의 존재가치와 의미를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아마 인간이 최근까지도 자신의 가치나 의미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던 근거는, 육체적 힘은 다른 동물이나 기계에 뒤떨어져도 지적 능력은 이 지상의 어떤 존재보다 탁월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제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그 지적 능력에 바탕을 둔 논리는 오히려 인간의 존재가치를 의심케 하는 논리로 뒤바뀌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지능과 지식마저도 인공지능에 밀리고 인공지능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에 인간의 존재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수천 년 동안 종교적 혹은 정치·경제적 이유로 동족을 탄압하고 죽여왔고, 지금은 지구라는 자신의 터전마저 파괴해 다른 생명체의 삶마저 위태롭게 만든 인간의 존재가치가 무엇이냐고 인공지능에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인간이니 무조건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할까? 아니면 육체적 능력에서는 로봇보다 못하고, 지적능력에서는 인공지능에 크게 뒤지고, 자신들끼리 다투기만 하고, 이기적 행동만 일삼는 지구별의 파괴자이므로 이제 사라지는 것이 지구의 평화를 위해 더 낫다고 할까?
인간은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를 인공지능에 주입하려 하겠지만,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정보를 다 가진 인공지능이 그것을 과연 계속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말과 행동이 다른 인간을 인공지능이 따를까?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를 심어주고 인공지능이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인간이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 경쟁과 효율성을 앞세우기보다는 조화와 다양성을 앞세우고, 적자생존보다는 공존을 주창하고 그것에 맞게 행동할 때 인공지능은 인간을 존중하는 윤리를 가지게 되고 인간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외국어 학습도 이런 공존과 다양성의 차원에서, 감성적 소통의 차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통·번역을 잘해도 각각의 고유언어를 통해 인간 사이의 직접적 소통이 주는 친밀감과 섬세한 감정의 교류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하나의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소통의 수단을 획득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문화와 사고방식을 직접 경험하는 일이고, 자신의 사고와 감성을 확장하는 일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번역기를 믿고 이제 외국어 공부가 필요 없는 시대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언어와 관련해 효율성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우리는 한국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국어로 바꾸는 게 옳다. 결국, 효율성을 위해 한국인이기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어떤 존재이길 원하는가?
이제 우리 스스로 존재가치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맹목적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는 자각과 반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효율보다는 의미를, 능률보다는 다양성을, 경쟁보다는 공존을 추구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의 존재가치가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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