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는` 푸틴
세계 식량시장에 짙은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러시아가 걷어찬 흑해곡물협정은 1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식량무기화' 카드를 또다시 매만지며 세계인의 밥상에 깊은 시름을 던졌다.
당장 먹거리의 기본인 밀과 옥수수 가격 움직임이 심상찮다. 아직 국내 수급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지만 가격 상승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국제 곡물가격은 기다렸다는듯 상승 국면에 진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전 세계 곡물 가격이 최고 15%가량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는데, 딱 그 기조다.
지난 6월 서울의 유명 식당 냉면값은 이미 1만5000원을 찍었다. 자장면값은 4923원에서 6915원으로 40%나 껑충 뛰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곡물시장이 들썩일 경우 수입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7월 물가 성적표를 보면, 빵가격이 8.1% 올랐다. 집중호우로 인한 작황 부진으로 채소류도 7.1% 뛰었다. 당국은 물가 상승을 예상했다. 이달부터는 물가상승률이 다시 높아져 연말까지 3% 안팎에서 등락할 것이란다.
잘 알려진대로 우크라는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다. 우크라의 비옥한 대지는 보리와 옥수수, 밀의 생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아낌없이 제공한다. 전세계에서 보리 3위, 옥수수 4위, 밀 5위 생산을 자랑하는 농업 대국이다. 수확된 곡물의 95%를 흑해에 위치한 오데사항 등을 통해 수출해왔는데, 이것이 외통수가 됐다. 러시아의 어깃장으로 곡물 수출길이 꽁꽁 묶여버린 것이다.
흑해곡물협정은 단순히 수출선의 안전 확보로 그치지 않았다. 우크라의 곡물은 가장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놓인 저소득 79개국 3억4900만명에게 생명줄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들 나라에 대한 우크라의 대규모 식량원조는 전쟁 중에서도 이 협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크라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가 식량원조용 농산물을 조달하는 국가 중 2위를 차지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 협정의 의의를 극찬하며 '희망의 등대'라고까지 부를 정도였다.
전쟁의 참혹함은 빈곤한 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법이다. 우크라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식량 수급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자 일부 개도국에 불어닥친 민생고는 정국 불안으로까지 번졌다. 전쟁 발발 직후 사상 최고를 기록한 밀 선물 가격은 이를 그대로 드러냈다.
딱 1년전, 전쟁 와중에 흑해곡물협정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이렇다. 유엔이 우크라와 러시아의 식량 수출을 위한 협상을 제안하고 양국과 우호관계를 가진 튀르키예가 참여하면서 협정은 어렵사리 성사됐고 세계 식량시장에 '단비'가 내렸다.
이 협정에 따라 우크라의 곡물 수출 선박은 안전을 보장받았다. 러시아도 농작물과 비료 수출이 가능해졌다. 우크라는 오데사항 등 3개 흑해 항구를 통해 지난 1년 동안 무려 3290만t의 곡물을 수출했다. 협정의 선순환은 컸다. 급등하던 국제 식량 가격은 진정됐다. 이집트와 레바논 등 수입 식량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들의 먹거리 위기에 숨통을 터줬다.
전쟁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러시아는 '빈국 생명줄'인 이 협정을 내팽겨쳤다. 전문가들은 우크라 침공에 대한 서방의 제재로 퇴출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네트워크 복귀를 노린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러시아는 300개 넘는 은행이 스위프트에 가입해 있다. 미국 다음으로 스위프트 결제 건수가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원유, 광물, 곡물 등 원자재를 전 세계로 수출하고 스위프트를 통해 막대한 수출 대금을 받아왔다. 하지만 스위프트 퇴출로 그 통로가 막혀버렸으니 장기집권을 꿈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단단히 열이 날 법도 하겠다.
우리 속된 말로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곡물협정을 파기한 러시아를 강력규탄하면서 "푸틴이 식량을 무기화하기로 한 것은 큰 실수"라고 직격했다. 한마디로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라는 얘기인데, 과연 이 말이 푸틴 귀에 들어갈까 싶다.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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