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in]"외교관 40년 궤적, '국제무대 꿈' 이정표 됐으면"
외교부 대변인·인도 대사 등 역임
2년전 은퇴후 공직 인생 글로 정리
3년 공들인 요르단 원전수주 수포로
좌절 컸지만 '연구용 수출' 성과도
한국 외교관으로서 자부심 높아져
젊은이들, 인생 걸고 도전 해볼만
“외교관으로 살던 40여 년 동안 ‘주류’라는 곳에는 별로 끼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래도 걸어온 길이 전혀 의미가 없었느냐면 그건 아니란 말이죠. 외교관으로 출세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이 길을 꼭 가야 한다고들 너도나도 말하는데 저는 꼭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비슷한 길을 먼저 걸은 선배로서,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과정에서 한국 외교에 기여한다고 느꼈을 때 외교관으로서 진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죠.”
신봉길(사진) 한국외교협회장이 직업 외교관으로 살아온 40여 년을 돌아보며 책을 펴냈다. 제목은 ‘어쩌다 외교관’. 어릴 때부터 외교관을 간절히 꿈꾼 것은 아니었고, 그래서 모든 면이 준비돼 있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참 보람 있었고 좋았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 붙였다.
1978년 제12회 외무고시를 통과한 후 반평생 외교 외길을 걸었던 신 협회장은 재직 시절 북한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특보, 외교부 대변인, 주중 공사, 한중일 협력사무국 초대 사무총장, 주인도 대사 등을 거쳤다. 올해 초에는 전·현직 외교관들로 구성된 공익 모임인 한국외교협회의 수장으로 선출됐다. 그러니 ‘어쩌다 외교관’은 어쩌면 과한 겸손이다. 그럼에도 ‘조금은 튀는’ 제목을 일부러 고른 건 외교관을 꿈꾸는 후배들이 제목에 끌려서라도 한번 펼쳐봤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고 한다.
직업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그의 ‘오랜 버킷리스트’였다. 외교부 대변인을 마치고 주중 공사로 근무하던 2000년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외교관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라는 글을 하나 올렸던 일이 계기였다. 외교관이 되려면 영어도,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자질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을 너그럽게 수용하는 ‘오픈마인드’라는 생각을 담은 글이었다.
그는 “지금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글을 읽고 공유하는 게 흔하지는 않았는데 단 하루 만에 5000명 넘는 사람이 보고 200명 이상이 글을 퍼가며 화제가 됐다”며 “외교관을 꿈꾸는 청년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싶어 새삼 놀랐다”고 떠올렸다. 그렇다면 좀 더 제대로 된 조언을 해보자는 생각에 틈나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내용을 구상했다. 하지만 업무에 밀려 좀처럼 글 쓸 시간을 내지 못하다 2021년 공직 생활을 끝낸 후에야 비로소 펜을 들었다. 그는 “대단한 성공을 한 것도 아니지만 성공 비화를 늘어놓기보다는 외교관이라는 삶의 궤적을 구체적이고 상세히 기록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렇게 공들여 써 내려간 궤적에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 녹아 있다. 일례로 2007년 초임 대사로 요르단에 부임했을 당시 역사상 최초로 한국형 원전을 수출했다는 성과를 내고 싶어 요르단 원자력 위원장을 100번 이상 만나는 등 공을 들였지만 잘 풀리지 않았고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선수까지 뺏기며 요르단 프로젝트가 정부의 관심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3년을 몽땅 바친 일이 수포로 돌아왔으니 무척 속상했다”고 기억했다. 다만 그의 노력은 연구용 원자로 수출이라는 성과로 돌아왔고 이때 일을 계기로 ‘노력은 끝내 배신하지 않는다’는 교훈도 얻게 됐다고 했다. 남북한 공존을 위해 북한을 여섯 번이나 오가며 노력했지만 2002년 3월 농축 우라늄 사태 등이 터지며 모두 허사가 돼버렸던 좌절감도 아직 선명하다.
그럼에도 외교관이라는 직업은 일생을 걸고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국제조약으로 직업의 성격과 역할이 규정된 세계 유일한 직업이 바로 외교관”이라며 “힘들기도 하지만 지루할 틈 하나 없었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그가 외교부에 몸담고 있던 40여 년간 한국의 위상 변화와 함께 한국 외교관의 자부심이 커진 것도 매력적인 지점이다. 신 협회장은 “내가 처음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한국이 유엔 분담금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해 그걸 조금 덜 내려고 사정하는 게 내 업무 중 하나였다”며 “지금은 유엔 분담금을 세계 아홉 번째로 많이 내는 명실상부 선진국의 대표자로 세계 어느 나라, 누굴 만나자고 해도 못 만날 사람이 없는 것이 한국의 외교관”이라고 했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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