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치권과 폭넓은 관계 강점···4대그룹 복귀가 첫 시험대
방산기업 특성상 美네트워크 탄탄
지정학적 리스크 속 적임자 판단
22일 총회서 4대그룹 합류 기대
정경유착 이미지 쇄신 주요 과제
'한국판 AEI'로 거듭나야 지적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후신이 될 한국경제인협회의 새 수장으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내정하면서 ‘재계 맏형’ 지위 회복을 위한 밑그림을 완성하게 됐다. 해체 직전까지 몰렸던 조직의 정상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4대 그룹(삼성·SK(034730)·현대차(005380)·LG(003550)) 가입, 대국민 신뢰 회복 등 아직 맞춰야 할 퍼즐 조각도 많이 남아 있다.
7일 전경련이 한경협 출범을 앞두고 새 회장으로 추대한 류 회장은 재계, 특히 미국에서 풍부한 인맥을 갖춘 ‘미국통’이다. 각종 탄약류 등을 생산하는 방산 기업인 풍산(103140)은 재계 순위 70위권 수준으로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 수장으로는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류 회장이 재계 순위로 확인할 수 없는 확고한 무형자산을 갖춘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류 회장은 민주당·공화당을 아울러 미국 정치권 인사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고 있다. 방산 기업 특성상 미국 내 각종 재계·관계 인사들과의 접점도 꾸준히 넓혀왔다. 여기에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을 맡으면서 미국과의 네트워크가 더욱 탄탄해졌다. 특히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일가와는 선친인 류찬우 회장 때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과의 네트워크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류 회장의 ‘맨파워’는 경제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라는 평가다. 2001년부터 전경련 부회장단으로 활동하면서 재계의 신뢰를 받고 있어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원만한 중재를 이끌어낼 적임자라는 기대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경련의 위상을 감안해 주요 그룹 총수를 앞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류 회장의 이 같은 능력을 눈여겨본 많은 인사들이 적임자로 추천했다”고 배경을 전했다.
22일 총회 이후 한경협이 권한대행 체제를 벗고 ‘글로벌 싱크탱크’로 새로 태어나게 됐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는 많다.
류 회장의 첫 시험대는 ‘4대 그룹의 실질적인 복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경련은 해산한 한국경제연구원의 회원 명단을 승계하는 방식으로 22일 총회에서 4대 그룹 복귀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K스포츠·미르재단 사태 속에 탈퇴했던 4대 그룹이 부정적 여론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어 합류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의 경우 전경련 복귀(한경협 가입)를 위해 이사회를 거쳐 독립 감시 기구인 삼성준법위의 의사 결정을 거쳐야 하는데 삼성준법위의 정기 회의가 전경련 총회와 같은 날인 22일에 열려 당장 결론이 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4대 그룹의 가입이 이뤄지더라도 회비 납부를 비롯한 실질적인 회원사 역할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관건이다. 실제로 현재 4대 그룹은 한경협 합류와 별개로 회비 납부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전경련의 재정에서 4대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4대 그룹이 모두 회원사로 있었던 마지막 해인 2016년에 전경련의 연간 회비 수익은 408억 원에 달했지만 이들이 빠져나간 이듬해에는 113억 원으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회원사로 이름만 걸친다고 한경협의 재계 위상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4대 그룹의 적극적인 활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반쪽짜리 재탄생’에 머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전히 씻어내지 못한 과거 전경련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정경유착이라는 불미스러운 폐해가 조직 위상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이 됐던 만큼 이 같은 우려를 얼마나 씻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이찬희 삼성준법위원장은 “전경련이 과거 정경유착의 고리라는 폐해가 있었다”며 “스스로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경련은 자체 쇄신안을 통해 연구 기능 중심의 조직으로 성격을 바꾸고 ‘과거와의 단절’을 약속하는 등 변화 의지를 내비쳤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은 “정부 관계에 치중했던 과거를 통렬히 반성한다”고 했다.
다만 재계에서는 여론을 의식하는 4대 그룹을 움직이기 위해 더욱 구체적인 쇄신안이 필요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수사적인 ‘쇄신 의지’ 외에 내·외부에 재가입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명분을 갖춰줘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처럼 한경협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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