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안전 지키는 간첩죄 조항, 시급히 개정돼야
최근 전직 삼성전자 직원이 중국 업체에 취업하기 위해 반도체 초미세 공정 기술을 빼돌린 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끌면서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법안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지난 20일까지 국회에 제출된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만 총 6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 법안들 못지않게 중요한 형법 제98조(간첩죄)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라는 사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형법 개정안은 적국(敵國)을 위한 간첩 행위만을 처벌하는 제98조에 추가하여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한 간첩 행위도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적국을 위하여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는 제98조에 비해 개정안은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를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이 형법 개정안은 여야 의원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6월 28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하여 제동이 걸렸고, 차기 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현행 형법 제98조는 전시(戰時) 형법인 1940년 일본 개정형법 가안(假案)을 기초로 하여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만을 처벌하고 있다. 여기에서 적국이란 대한민국에 선전포고를 하였거나 사실상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국가를 의미하므로, 평시에 우리의 국가 기밀을 빼가는 외국 간첩들은 이 조항에 의한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북한은 적국에 해당하지만,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는 주로 국가보안법 제4조에 규정된 반국가단체의 '목적수행' 간첩죄로 처벌된다. 이런 이유에서 형법 제98조는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전체제 종식 이후 전통적인 군사력 위주의 안보 개념이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는 포괄적 안보 개념으로 확장되면서 간첩의 개념도 바뀌었다. 우방과 적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우방국들 간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치열한 정보 전쟁을 벌이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들은 적국과 비적국을 가리지 않고 외국 또는 외국인을 위해 자국의 국가 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하는 행위를 간첩죄로 다스리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지정학적으로 미·중 대립의 중간에 끼여 있는 우리의 안보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형법 제98조를 시대에 맞게 시급히 개정해야 하는 이유다.
외국 등을 위한 간첩죄를 신설하자는 형법 개정안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법체계상 혼란 가능성을 지적했다. 즉 군사기밀 유출은 '군사기밀보호법'으로, 산업기술 유출은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다시 외국 등을 위한 간첩죄를 신설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기밀이나 산업기술은 간첩죄의 보호 대상인 국가 기밀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률 간 중복 내지 충돌을 걱정하는 법원의 지적은 수긍하기 어렵다. 하루속히 형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국가 안보를 위한 형사법 체계가 완비되길 기대한다.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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