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파행 치달은 잼버리,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조해람·강현석 기자 2023. 8. 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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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할 시간·여력 있었는데 준비 미흡에 운영 미숙
사상 초유 파행에 ‘책임 소재 규명’ 불가피할 듯
정부가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 전원 조기 철수 계획을 연맹 측에 전달한 7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에서 한국 대원들이 퇴영을 준비하고 있다. 부안|조태형 기자

파행으로 진행되다 태풍 ‘카눈’으로 인해 조기 종료를 눈앞에 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행사 내내 총체적 운영 미숙으로 도마에 올랐다. 행사 이전부터 ‘준비 미흡’ 지적이 제기되고, 행사 초반에는 운영 미숙 문제가 불거졌지만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책임을 돌리거나 사안을 축소하려는 자세만 보여왔다. 중앙정부가 뒤늦게 컨트롤타워를 맡고 전폭적 지원에 나섰을 땐 이미 주요 참가국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뒤였다. 사상 초유의 ‘대규모 국제행사 파행’을 두고 정부와 지자체 등의 책임 소재 규명이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 지적에도 “잘 되고 있다” 일관

잼버리 준비 미흡 우려는 지난해부터 이미 제기됐지만 정부는 ‘문제 없이 준비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해 밝혔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8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샤워실과 화장실, 급수대 등 시설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의 지적에 김 장관은 “늦어진 건 농식품부나 해수부, 새만금청과의 사용 허가 변경 절차인데 거의 완료됐다”고 답했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이 의원은 “폭염 폭우 대책과 해충방역, 감염대책, 영내외 프로그램을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김 장관은 이때도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 놓았다”며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행사가 다가오면서 폭염이 예상됐지만 정부는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잼버리조직위는 지난 6월 폭염이 예상된다며 여가부에 예산 93억원을 추가 요청했지만, 여가부와 기획재정부와 협의가 잘 되지 않아 20억원 가량만 지원됐다.

막상 행사가 열리니 개막일이었던 지난 1일에만 400여명의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 열악한 화장실, 영지 내 물빠짐 문제, 부실 식단 등 총체적 운영 미숙이 드러났다. 하지만 조직위는 행사 첫날 온열질환자 대거 발생을 두고 “경증 환자가 대부분”이라며 “안정적으로 대응 중”이라고 해명했다. 둘째 날 개영식에서도 또다시 온열질환자가 대거 발생했지만 조직위는 “(개영식에) K팝 행사가 있었는데 (청소년들이) 에너지를 분출하고 활동하다 보니 체력을 소진해 환자가 많이 발생한 걸로 파악했다”고 했다. 조직위는 당초 취재가 허가된 ‘델타 구역’ 취재를 돌연 제한하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진행 중인 7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 일부가 비어 있다. 부안|조태형 기자

연이은 해명에도 참가자들의 이탈이 이어졌고,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김 장관은 7일 브리핑에서 “처음에 준비 부족은 맞고, (다만) 상황이 많이 개선됐다”면서 준비 부족을 공식 인정했다.

‘나무 심겠다’던 전북도…결국 ‘새만금 개발’ 도구였나

개최지인 전라북도 역시 미흡한 준비로 도마에 올랐다. 특히 새만금 매립·개발의 명분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느라 정작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잼버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새만금 개발 위한 도구, 당연히 열악”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8071623001

세계 잼버리 대회 유치 추진 당시 전북에서는 새만금 대신 무주 태권도원과 구천동 야영장 등이 적합지로 거론됐다. 하지만 전북도는 이를 무시하고 새만금을 잼버리 유치 후보지로 결정했다. 한 전직 공무원은 “잼버리 개최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나무 한 그루도 없는 새만금의 경우 폭염과 폭우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무시됐다”며 “오로지 ‘새만금을 개발해야 한다’는 전북도의 일념 때문에 무주 태권도원이나 구천동 야영장 등과 같은 천혜의 후보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고 말했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일부 참가국이 조기 퇴영을 결정한 지난 5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 위로 태양이 빛나고 있다. 부안|조태형 기자

여의도 면적 3배인 광활한 새만금 잼버리 부지(8.84㎢)를 야영지로 조성하는 작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전북도는 유치 당시 갯벌 간척지인 잼버리 영지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겠다고 했다. 도는 산림자원연구과에 갯벌에 심을 수 있는 나무 묘목을 생산하는 업무도 만들었다. 하지만 유치 이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잼버리 영지는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벌판이다.

조직위와 전북도는 잼버리 개막 2주를 앞두고 참가자들이 원활하게 야영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설들을 점검했다. 폭염에 대비해 덩굴터널을 당초 3.7㎞에서 7.4㎞로 2배 늘리고, 안개분사시설을 설치했다. 화장실과 샤워장, 급수대, 분리수거장 등 야영생활에 필수적인 기반시설도 설치했다. 도와 조직위는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허브캠프, 서브캠프별 운영본부를 조직해 참가자의 생활에 대한 지원 및 관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성된 시설에 대한 상시관리도 실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는 잼버리 개막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미리 준비할 수 있었는데…‘책임 소재’ 실종

당초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이들은 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등이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집행위원장으로 실무를 총괄한다. 여기에 행사 참가자들을 대표하는 세계스카우트연맹까지 의사결정에 관여했다. 책임·권한이 복잡하게 꼬이기 쉬운 구조다.

정부가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 전원 조기 철수 계획을 연맹 측에 전달한 7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에서 한국 대원들이 퇴영을 준비하고 있다. 부안|조태형 기자

불분명한 책임 소재의 문제는 잼버리 초반에 이미 드러났다. 주무부처인 여가부는 행사 수 개월 전부터 관련 기획·홍보를 도맡아왔지만, 막상 행사가 시작된 뒤에는 ‘온열질환 현황 집계와 대응·대책 등은 조직위 소관’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여가부는 행사 3일째인 지난 3일에야 “폭염경보와 관련해 모든 진행과정을 논의하며 청소년의 안전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며 진행 중”이라는 첫 입장을 냈다.

이런 상황 속에 미리 지원할 수 있는 조치들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일부터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서면서 냉방버스와 냉동탑차, 화장실 등이 대거 지원됐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에 따라 정부지원위원회가 설치돼 있음에도 준비상황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다가 뒤늦게 지원에 나선 셈이다. 잼버리 정부지원위원회 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현장을 찾아 “지금부터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서 안전 관리와 원활한 대회 진행을 책임지겠다”한 점을 두고도 ‘유체이탈’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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