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의 두 얼굴…평시엔 전기, 전시엔 핵무기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강행이 시작될 시점인 8월에 접어들었다. 역사적으로 8월은 우리에겐 8·15해방을, 일본에게는 2차 세계대전 패전을 기억하게 하는 달이다. 1945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원폭 투하와 2011년 후쿠시마원전사고로 일본은 인류 역사 상 미증유의 대참사를 경험했다.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오염수 해양투기나 폐로문제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향후 30~40년이 더 지나도 제대로 수습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왜 일본은 오염수 해양방류 외에 다른 처리방식을 생각하지 못할까? 내년 완공 예정인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핵연료재처리공장은 왜 무리를 하면서 30년 가까이나 추진하고 있을까? 재처리공장의 핵오염수 처리는 어떻게 될까?
지난해 7월 아베 신타로 전 일본 총리가 피격 사망했다. 아베 전 총리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꿨던 인물이다. 전쟁은 곧 죽음이고, 환경과 평화의 대척점에 있다. 지금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정치적으로 아베 전 총리를 계승하고 있다. 군국주의로 가면 결국 원전은 원폭(핵무기)으로 전환된다. 일본의 그간 흑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구니마이 요시아키(國米欣明)는 『인간과 원자력<격동의 75년>(人間と原子力<激動の75年>)』(2013)에서 원자폭탄, 원자력발전, 방사선피폭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데 원자력의 역사를 1938년 ‘핵분열의 발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1938년 독일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오토 한(1879~1968)이 원자핵분열을 발견했다. 엔리코 페르미(1901~1954)는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에 중성자를 조사함으로써 40종 이상의 인공방사성동위원소를 생성, 실험과정에서 열중성자를 발견했다. 이탈리아인인 페르미는 유태인 아내가 박해를 받자 193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식에 출석한 뒤 바로 미국으로 망명해 원자폭탄개발계획에 참여하게 된다. 유대인이자 폴란드 출신의 미국 수학자 스타니스와프 마르친 울람(1909~1984)은 핵분열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이론상 원자폭탄 제조의 가능성을 보였다. 울람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형제가 동시에 폴란드를 탈출했는데 남은 가족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희생됐다. 울람도 미국망명 후 원폭개발계획에 참여했다. 2차 대전 중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유태인 수용자 400만~600만 명이 집단학살을 당했다.
나치 독일의 원폭개발계획 추진 가능성에 초조해한 미국 거주 망명 유대계 물리학자들은 1939년 10월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 대통령 앞으로 서신을 보내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 개발을 추진할 것을 요망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소위 ‘맨해튼 계획’으로 당시 20억 달러(지금의 금액으로는 약 300조 원)라는 막대한 예산에 연 54만 명이 동원됐다. 1945년 7월 16일 사상 최초의 원폭실험이 이뤄졌다. 이 실험성공을 계기로 원자폭탄의 제조·관리·사용의 의지결정권이 과학자들의 손에서 정치가의 손으로 옮아갔다. 히틀러는 그 해 4월 30일 이미 저택 지하에서 자살했고, 5월 8일 독일정부가 연합국에 항복했고, 폴란드의 강제수용소들도 소련에 의해 해방됐다. 트리니티실험의 가공할 결과를 앞에 두고 개발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절대 인류에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으나 이미 과학자의 손을 떠난 뒤였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15분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다. 원폭 ‘리틀보이’는 1000만 분의 1초의 핵분열의 연쇄반응으로 우라늄235 60kg 중 1kg이 핵분열을 일으켜 핵에너지를 방출했다. 이때 리틀보이의 중심부는 5500만℃의 고온과 수십만 기압이 형성됐다. 1946년 2월 유엔사령부는 히로시마 원폭 사망자가 7만8150명, 행방불명 1만3983명, 중상자 9428명, 경상자 2만7997명으로 발표했다. 이것은 직접피폭자에만 해당하는 숫자였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2분 플루토늄형 원자폭탄 ‘팻트맨’이 나가사키 상공에서 투하됐다. 당시 나가사키시 인구 24만 명 중 사망자가 7만3884명, 부상자 7만4909명으로 발표됐다.
원자폭탄이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원폭투하 결과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나라는 식민지에서 해방됐다. 그런데 6·25전쟁 중에 원자폭탄이 사용될 뻔했다. 중국이 인해전술로 한국전쟁에 참가해 유엔군과 국군이 후퇴를 거듭할 때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만주 월경지역 폭격과 만주 주요 군사기지 및 중국 본토에 원폭투하 허가를 구했다. 트루먼은 배후 소련의 한국전쟁 참전 유발을 우려해 단념했는데 맥아더가 대통령의 우유부단을 비판했다. 이에 트루먼은 원폭사용 대신 맥아더를 해임하는 결단을 내렸다. 귀국 후 미 의회의 증언대에서 맥아더가 남긴 말이 바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이었다. 인류사상 세 번째 원폭투하를 가까스로 피한 것이었다(國米欣明, 2013, pp.146-147).
1945년 2차 대전 종전과 더불어 미소(美蘇) 냉전이 시작됐다. 미국은 1952년 11월에 수소폭탄 폭발실험을 성공시켰다. 이에 앞서 1942년 페르미가 세계 최초로 핵분열을 제어할 수 있는 원자로 제작의 길을 열었고, 미국은 1951년 고속증식로로 100kW의 터빈 구동에 성공했다. 1952년 미 원자력잠수함인 노틸러스호가 탄생했고, 옛 소련도 1954년에 5MW의 발전용 원자로를 개발했다. 미국은 1957년 60MW의 가압경수로(PWR)인 시핑포트원전을 가동했고, 1961년 180MW의 비등경수로(BWR)인 드레스덴원전을 건설, 상업운전에 들어갔다(『원자력의 유혹』, 심기보, 2008).
1953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한 아이젠하워는 냉전에서의 급속한 핵개발 경쟁으로 핵전쟁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안고 유엔 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이라는 연설을 한다. 이 연설에서 아이젠하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추진과 군사 전용 방지를 담보하기 위한 보장조치로 국제기구의 설립을 제안하고 이에 따라 1957년에 미국 주도로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설립됐다. IAEA가 특히 경계하는 것은 원전 원자로 안에 생성되는 플루토늄(Pu)239의 핵무기 전용이다. 우라늄(U)235의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로에서는 연료봉 안에 핵분열을 하지 않는 U238이 다량 포함돼 있다. 이것이 원자로에서 고속중성자 조사를 받아 중성자를 원자핵 내에 포획해 U239가 된다. 그것이 베타선을 방출해 핵붕괴(베타붕괴)를 하면 넵튬(Np)239로 변하고 또 한번 베타붕괴를 하면 핵분열물질인 플루토늄239가 생성된다. 플루토늄239를 재처리해 뽑아내면 핵무기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북한의 핵개발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온 것이다.
한편,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원전사고,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원전사고는 국제사회에 원자력안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국제사회가 원자력안전 관련 협약의 체결에 적극 임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원자로의 건설과 더불어 핵물질의 방호가 문제가 됐고, 2001년 9·11 미국 동시다발테러로 인해 핵테러리즘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이렇게 보면 원자폭탄과 원자력발전은 마치 ‘자연에서의 낙뢰’와 ‘가정에서의 전기’와 같다. 보통의 핵연료는 원폭과 같은 우라늄235이다. 원폭이나 원전 모두 이 원자에 중성자를 합성시켜 핵분열을 일으키게 한다는 점에서 원리는 같다. 원폭은 연료 속에 핵분열을 일으키는 U235가 95% 이상 포함돼 있으므로 1회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두세 개의 중성자가 잇달아 U235와 만나 한순간에 모든 핵분열이 일어난다. 원전의 연료에 포함되는 U235는 5% 정도이고 나머지는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U238이다. 원전은 핵분열로 생긴 중성자 일부를 제어봉에서 흡수하여 급속한 연쇄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발생한 열로 물을 끓여 그 증기로 발전하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은 핵무기 즉 원자폭탄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고 하는 것인데 사실은 원자폭탄의 에너지를 기술적으로 제어해 수증기를 만들어 발전기 터빈을 돌리는 것이기에 화력발전과 원리가 같다. 원전은 핵분열 시 나오는 방대한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어서 터빈을 돌리는데 원전 연료봉의 중심은 약 2800℃나 된다. 원전의 터빈을 돌리는데 이용하는 증기는 400℃ 전후이므로 약 3분의 2의 열은 바다 강 호수로 흘려보낸다. 분열로 생긴 중성자 일부는 U238에 흡수되어 원폭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239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원전은 ‘평화를 표방한 군사시설’이기도 하다. 원전에서 나오는 ‘죽음의 재’인 사용후핵연료는 수십만 년에 걸쳐 방사선과 열을 계속해서 방출한다. 현재 스웨덴 핀란드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방법을 정한 나라는 없다.
54기의 원자로를 가동하던 ‘원전 선진국’ 일본에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후쿠시마원전은 원자로 안전을 위한 최소 전력마저도 없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고, 이로 인해 원자로 냉각을 위한 냉각수 펌프 가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냉각수가 급속히 증발해 원자로 내부 온도 및 압력이 상승, 노심 온도가 1200℃까지 상승, 수소폭발과 방사능 유출이 일어났다. 일본 정부는 사고 후 후쿠시마제1원전 1~3호기에서 유출된 세슘137이 15,000TBq(테라베크렐, 테라는 조)로, 89TBq이었던 히로시마 원폭 리틀보이의 168.5배라고 밝혔다. 노르웨이 대기연구소는 세슘137이 무려 3만6000TBq 유출된 것으로 추산했다. 이 사고로 10여 년이 지났지만 원전 반경 20km 이내 지역이 출입금지 상태이며 아직도 1만5000여 명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따른 손해액은 2011년 12월 일본 정부 위원회가 주민 배상금과 원자로 냉각비용 등을 바탕으로 5조8000억 엔(약 58조 원)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2014년 3월에는 제염(除染)과 배상, 폐로 등 손해액의 최신 전망치를 합해 11조 엔 이상, 2016년 12월 경제산업성은 21조 엔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했다. 2017년 4월 민간싱크탱크인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원전사고 관련 피해 총액을 50조~70조 엔(약 500조~700조 원)으로 추산하는 등 날이 갈수록 피해 추정액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원전을 증설하면서 안전에 소홀했던 일본 정치 지도자는 단 한 명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지난해 아베 사후 자민당은 선거 압승으로 평화헌법 개정에 나설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본 군사대국화의 핵심은 핵무기 보유라 하겠다. 일본은 언제든지 원전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서 나온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국제정세분석가인 다나카 사카이(田中宇)는 ‘일본의 핵무장과 세계의 다극화’(세계한인신문, 2013년 5월 21일)라는 칼럼에서 ‘일본은 롯카쇼무라의 재처리공장이 풀가동되면 연간 9t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핵무기 2000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아베 정권 주변에서는 일본이 핵무장해야 한다는 여론을 고조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2006년 9월에 일본이 핵무기를 만들려면 3~5년의 시간과 3000억~5000억 엔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핵무장 논의의 토대가 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것은 일본이 핵무기를 만들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 아오모리현의 롯카쇼(六ヶ所)핵연료재처리공장이 1993년 착공 이래 25차례의 연기 끝에 내년에 완공되는 걸로 일본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롯카쇼재처리공장은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고 1년에 약 8t의 플루토늄을 분리한다(https://cnic.jp/knowledgeidx/rokkasho).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만 약 3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롯카쇼재처리공장에서 나오는 핵종이 천문학적이다. 연간 대기중에 방출되는 방사성물질은 삼중수소(H-3)가 1900조Bq, 탄소(C)14 52조Bq, 요오드(I)129 110억Bq, 요오드(I)131 170억Bq, 루테늄(Ru)106 410억Bq, 세슘(Cs)137 11억Bq, 스트론튬(Sr)90 7억Bq, 플루토늄240 2억Bq 등이다. 액체로 태평양으로 방출되는 방사성물질은 삼중수소가 1경8000조Bq, 요오드129 430억Bq, 요오드131 1700억Bq, 루테늄106 240억Bq, 플루토늄241 800억Bq, 세슘137 160억Bq, 스트론튬90 120억Bq, 세슘134 82억Bq, 플루토늄240 30억Bq 등이다.
신동애 기타큐슈대 법학부 교수는 지난 6월 경주에서 열린 한국정책학회 ‘지속가능한 환경정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정책적 논의와 국제안전관리기관의 논의’란 주제의 연구회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방류의 본질은 일본의 원자력정책 추진의 걸림돌 제거를 위한 선제적 조치이다. 미일원자력협정이란 우산 속에서 미국의 묵인 하에 해양방류를 하는 것으로 2024년 완공될 롯카쇼무라재처리공장에서 나오는 엄청난 각종 오염수 처리를 손쉽게 하기 위한 조치로 국제환경범죄라고밖에 볼 수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투기 결정은 향후 롯카쇼무라재처리공장의 삼중수소 등 다핵종 오염수의 해양투기를 하지 못한다면 일본 원자력정책 자체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일본 정부가 삼중수소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다핵종 오염수의 해양투기에 대한 반발을 사전에 줄이기 위한 시도이다.”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만들 역량은 있다고 한다. 미국 과학자연맹 퍼거슨 회장의 「한국 핵무장능력 평가보고서」(2015)는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려면 핵분열 물질, 핵폭탄 설계능력, 그리고 운반 수단을 갖추어야 하는데, 월성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26t의 ‘무기화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이는 4330개(1개당 6kg 소요)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일부 여당 인사가 우리나라 핵무장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비현실적이다.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불가능한데다 대한민국의 핵무장 가능성과 변수는 전적으로 미국의 의사에 달려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를 보면서 군국주의체제 하에 전쟁을 일으켰다 원자폭탄을 맞고, 그 변형인 원전을 추진하다 대참사를 빚었음에도 다시금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한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군사주의의 길로 가면 원전은 원폭이 된다.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에서 보듯이 전쟁이 발발하면 원전도 공격대상에서 비켜갈 수 없다. 기술중립주의를 강조하는 과학조차도 세계적으로 정치에 예속된 지 오래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안전성과 관련해 친원전 과학자들이 아무리 안전성을 강조해도 국민들의 우려를 씻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안전을 무시하고, 평화를 경시하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외치는 지도자는 위험하다. 2023년 8월, 일본의 흑역사를 생각하며 분열과 갈등이 아니라 평화와 타협의 정치, 그러한 지도자가 절실하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살고 지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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