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법정] 천경자 '미인도' 진위공방이 남긴 것
檢이 진품 결론내린 '미인도'
예술인생 가십거리로 만들어
그 속에 담긴 열정 잊히게 해
2015년 10월, 고 천경자의 뒤늦은 부고에 한국 미술계 안팎은 술렁였다. 뉴욕에서 극비리에 장례를 치른 이유는 무엇일까. '미인도'는 천경자의 작품이 맞을까. 사람들은 가십을 좋아한다. 가십은 법정 공방으로 넘어가고 거장의 예술 인생에 대해 차분히 회고해 보는 시간마저 앗아갔다.
그로부터 8년 후인 지난 7월 21일, 법원은 고 천경자의 유족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예술가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19년 검찰이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지은 수사 결과에 대한 반발이었다.
논란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장하다가 재산이 몰수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되었던 '미인도'가 국립현대미술관 순회전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을 때, 이 예술가는 "난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 없다"고 선언했다.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인도'는 감정 절차 등을 통해 진품으로 결론지어졌다. 그가 뉴욕으로 떠나면서 사그라드는 듯했던 논란은 사망 소식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최종 결과가 바로 이번 판결이다. 이로써 30여 년에 걸친 '미인도' 논란은 종결됐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말이다.
예술은 법의 판단이 부족할 수 있고, 법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법은 그저 법의 기준과 법의 방식으로 판단할 뿐이다. 법정에서는 전문가의 의견, 과학적 분석 방법, 서류와 증거품, 그리고 예술가 자신을 포함한 여러 증언을 병렬해 두고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이에 비해 예술계에서 진위 감정이란 한 작품에 한 작가를 귀속시키는 지난한 연구와 학문의 과정이다. 하나의 작품이 예술가의 작업실을 떠나는 순간 이 작품은 더 이상 그 예술가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는 '불꽃 같은 삶'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한국의 프리다 칼로'와 비견했다. 불운한 개인사와 시대사의 격랑에, 그리고 숱한 편견과 오해에 맞서야 했던 한 여성 예술가의 삶을 하나의 수식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기가 센 여자'의 모습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이질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꿈틀대는 '뱀'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통해 구원받았다. 혀를 날름거리는 뱀들이 똬리를 튼 도발적 작품, 1951년 작 '생태'가 소개됐을 때, 어떤 '이상한 여자'가 그렸다는 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다. 긴 시간 천경자의 작품 세계는 '미인도' 안에 갇혀 버렸다. 그의 대표작도, 심지어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던 작품 말이다. 이제는 '미인도'가 아닌 천경자의 열정이 꿈틀대는 서른다섯 마리의 뱀들과 '생태'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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