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미국의 한일관계 조급증
10일 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와 만난다. 박근혜·문재인 정권 동안 한 번도 안 했던 양국 정상 간 교류가 올해 두 번이나 이뤄져 놀라울 정도인데 몇 개월 만에 바이든 대통령이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보니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다.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외교 참모가 쓴 '피벗'을 보면 미국의 외교 행보에 대한 경로 안내로 안성맞춤이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일명 아시아 차르)인 커트 캠벨은 2016년 출간한 이 책에서 "미국은 동맹국들을 공통의 목적 아래 하나로 묶어야 한다" "미국 없이도 국가 간 협력이 진행 중인데 특히 일본이 우수한 사례다" "미국의 숙제는 '동맹국들의 유기적 연결을 어떻게 더 증진하는가'이다"고 복안을 밝혔다.
공통의 목적은 중국 대응. 하지만 미국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가급적 다른 나라에 맡기자는 게 미국 '아시아 차르'의 속내다. 일본이 앞장서서 '쿼드' 창설 등 미국과 손발을 척척 맞춰 움직여 왔고 이제는 한일이 서로 어깨를 걸고 중국을 상대로 맞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일이 미국의 숙제로 남아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로 알려진 "한국과 일본이 공격을 받으면 상대방과 의무적으로 협의하는 방안"이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를 통해 공식화될 것이라는 내용에 특히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이라는 공동의 당면 과제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씨름하던 이슈를 덮고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의 기대가 이런 섣부른 아이디어가 나온 배경으로 보인다. 타국의 공격을 전제로 한국과 일본이 협의를, 그것도 의무적으로 한다는 것을 간단히 표현하면 '한일 군사 동맹'이다. 한국군과 자위대의 고만고만한 협력이 아니라 제3국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힘을 합쳐 싸울 준비를 의무적으로 한다는 의미다. 궁극적으로 한국이 미국과 하는 연합작전계획 수준의 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한일이 중국 동쪽 해역을 방어하고 미국은 대만과 남중국해에 군사력을 집중시킬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한일이 아직 이 정도로 가깝지는 않다. 경제협력과 문화·관광 교류는 긴밀하지만 독도·역사 이슈는 한국의 뿌리를 건드리는 문제다. 사회적 합의가 덜된 채 체결됐다가 결국 큰 짐이 됐던 위안부 협상을 떠올리면 한일 군사 동맹 추진이 불러올 후폭풍은 상상이 안 된다. 시간을 들여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건너뛴 채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조급증은 부작용만 가져올 것이다.
[안두원 글로벌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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