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새만금 개발 위한 도구, 당연히 열악”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의 준비가 미흡한 탓에 참가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게 된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새만금 매립·개발 사업을 위해 행사를 무리하게 졸속·편법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카우트 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영지는 관광레저활동 목적임에도 물빠짐이 용이하지 않은 ‘농업용지’로 변경됐고, 새만금국제공항은 잼버리 행사를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다. 전라북도도 잼버리를 두고 “사회간접자본(SOC) 구축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명분”이라고 보고 있었다.
7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새만금개발청의 2017년 12월 ‘새만금 기본계획’ 문서를 보면, 새만금개발청과 농림축산식품부는 관광레저용지(36.8㎢)의 일부인 잼버리 용지(약 8.8㎢)를 편의상 농업용지로 관리하기로 했다. 이 문서에는 “새만금개발청장과 농식품부 장관이 협의한 잼버리대회 예정부지에 대해서는 대회부지로 활용 후 일정기간 농업용지(유보용지)로 관리하며, 농식품부 장관은 새만금개발청장이 매각을 요청할 시 새만금개발청장이 지정하는 자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같은 해 12월6일 새만금위원회는 “대회의 시급성을 감안해 관계부처 협의로 농지기금을 투입해 농식품부에서 매립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농업목적으로 임시 매립한 뒤 잼버리 부지·농업용지로 활용 후 새만금개발공사 등에 양도해 관광레저용지로 개발토록 한다”고 했다. 해당 토지는 같은 달 농업용지로 변경됐고, 정부는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관리기금 2150억원(1구역 1002억100만원, 2구역 1148억300만원)을 들여 매립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해당 용지는 결과적으로 관광레저용지가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받아야 하는 정식 환경영향평가도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를 ‘편법 유용’이라고 지적했다. 잼버리는 명백히 관광레저 사업인데, 토지를 농업용지로 탈바꿈해 기금을 당겨왔다는 것이다. 새만금해수유통추진공동행동은 2020년 9월 새만금위원회 등을 고발하면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만금위원회와 정부부처가 국민을 속이고 사업의 시급성을 이유로 편법과 불법으로 새만금 잼버리부지 매립사업을 밀어붙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잼버리 행사 시작 후 불거진 영지의 물빠짐, 그늘 부재 등의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부지가 명목상으로나마 농업용지이기 때문에 평평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이 때문에 물이 제대로 빠지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김나희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홍보국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잼버리 영지로 하려면 배수가 잘 되게 굴곡을 두거나 레저용지처럼 조성했어야 하는데 농지용도다보니 평평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새만금 부지 가운데 이미 매립된 다른 곳을 쓰면 인프라를 만들 시간이 있었는데, 매립에만 욕심을 부리다 보니 염분도 제대로 빠지지 않아 나무도 자라지 않았고, 인프라를 만들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한승우 정의당 전주시의원은 “관광레저용도로 만들었다면 시설 개선이 조금 더 용이했겠지만, 뻘이 그대로 남은 상태에서 모래를 채우기만 했기 때문에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정부도 숨기지 않은 속내…“개발 박차 명분 필요”
지자체도 잼버리를 세계 최대 간척지인 새만금 개발을 위해 추진한다고 공공연히 밝혀 왔다. 전북도는 2018년 새만금 간척지를 잼버리 후보지로 결정하게 된 이유로 “새만금 개발의 조속한 추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북도는 2018년 발간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유치활동 보고서’에서 유치 배경과 관련해 “2010년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된 이후 전라북도는 새만금 내부 개발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나 당초 2020년까지 계획된 SOC 등이 더디게 추진되고 있었다”면서 “이에 전북도는 국제공항 건설 및 SOC 구축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명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전북도는 새만금 잼버리를 ‘전북발전의 지렛대’로 표현하기도 했다. 잼버리 유치 이후 새만금에는 실제 동서대로와 남북대로가 개통됐다.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새만금 신항만, 새만금 국제공항, 새만금항 인입철도 등 다른 SOC시설도 추진되고 있다.
전북도는 이 같은 SOC를 통해 새만금 내부개발을 앞당기고 기업투자를 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새만금 잼버리의 경제효과가 6조7449억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 중 대부분은 6조4656억원에 이르는 SOC 등 기반시설 조기 구축효과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잼버리 행사를 운영해 얻는 경제효과는 1198억원에 그쳤다. 국가 브랜드 제고 효과도 1595억원에 불과했다. 새만금 잼버리는 지자체가 나서 유치를 추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전 세계 청소년 축제’보다는 ‘지역 개발 촉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셈이다.
잼버리 영지 인근 수라갯벌에 들어설 예정인 새만금신공항도 잼버리를 명목으로 2019년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다. 김 홍보국장은 “잼버리가 열린 이상 이제 잼버리를 이유로 신공항을 만든다는 건 의미가 없어졌는데도 신공항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잼버리가) 매립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게 너무 잘 보이는 지점”이라고 했다. 한 의원은 “지금이라도 남아있는 갯벌이나 원형 용지들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노루 피하려다 차가 밭에 ‘쿵’···아이폰이 충격감지 자동신고
- 파격 노출 선보인 박지현 “내가 더 유명했어도 했을 작품”
- [종합] ‘케이티♥’ 송중기, 둘째 출산 소감 “예쁜 공주님 태어나”
- 명태균 “오세훈 측근 A씨로부터 돈받아” 주장…오 시장측 “전혀 사실무근” 강력 반발
- ‘대학 시국선언’ 참여 교수 2800여명···“대통령 즉각 하야하라”
- “23일 장외집회 때 ‘파란 옷’ 입지 마세요” 민주당 ‘특정색 금지령’ 왜?
- 동덕여대 “남녀공학 논의 중단”···학생들 “철회 아냐” 본관 점거 계속, 54억 손배도 쟁점
- 홍준표 “이재명 망신주기 배임 기소…많이 묵었다 아이가”
- 국회 운영위, 대통령실 특활비 82억 ‘전액 삭감’···야당, 예산안 단독 처리
- 불법 추심 시달리다 숨진 성매매 여성…집결지 문제 외면한 정부의 ‘게으른’ 대책 [플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