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562억 횡령해도 경남은행은 7년간 몰랐다
“변호사인 친구 녀석에게 들었는데, 횡령하고 싶으면 일단 강원랜드를 자주 다니래요. 반차 내고 가고, 주말에도 가고 시간 날 때마다 강원랜드를 다니며 도박에 빠졌다는 증거를 만들라는 거죠. 그래야 나중에 횡령한 게 걸려도 도박에 다 써서 토해낼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있다고 하네요. 반대로 그만큼 은행 입장에선 환수가 어렵다는 거죠.”
최근 BNK경남은행의 한 투자금융부서 부장급 직원 A씨가 7년 동안 500억원이 넘는 대규모 횡령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은행 직원의 자조 섞인 말이다. 올해 상반기 경남은행의 당기순이익이 1613억원인데, 이 금액의 3분의 1가량을 A씨 한 사람이 빼돌린 셈이다.
경남은행은 예금보험공사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이 A씨에 대한 금융거래 정보 조회를 요구하자, 수상함을 감지하고 지난 4월 A씨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석 달 뒤 횡령 정황이 발견됐지만, A씨는 7월 20일부터 무단결근 중이며 현재 행방불명된 상태다. 그 사이 A씨가 자산 매각 및 명의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한 뒤 잠적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선 장기간 대규모 횡령을 가능케 한 배경부터 살펴보면, 은행과 금융 당국 과실이 모두 존재한다. 금감원의 검사가 대표적이다. 금융사에 대한 검사가 주요 이슈와 전반적인 경영실태를 점검하는 식으로 진행되면서 금융사에 대한 상시 감독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계속해서 나왔다.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00억원대 자금을 빼돌린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뒷북 감독’이 문제가 됐다.
무엇보다 경남은행의 내부통제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한 부서에서 장기간 근무하는 것이 횡령 등의 금융사고 가능성을 키우는 만큼 은행은 통상 3~5년 주기로 순환인사를 한다. 하지만 경남은행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이 복잡하다며 A씨를 순환인사에서 배제해 15년간 동일 업무를 맡겼다. 우리은행 횡령 직원 역시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라며 10년간 한 부서에서만 근무했다.
금융 당국과 은행이 횡령을 사실상 조장·방조하는 상황에서, 회수는 당연히 거의 안 되고 있다. 최근 7년간 금융권 전체에서 약 1800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가운데 회수된 금액은 12% 수준인 220억여원에 불과했다. 은행권으로 좁히면 7.6%에 그친다.
지난해 712억원의 횡령 사건이 터진 우리은행의 경우 0.7%인 4억9800만원을 환수했다. 그리고 우리은행은 최근 분기 보고서에서 횡령 사건과 관련 ‘회수 가능 여부가 불확실해 전액 손실 처리했다’고 적었다.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포기한 셈이다.
경남은행 A씨의 경우 횡령액 562억원 가운데 환수 대상은 최소 375억원가량이다. 그러나 횡령이 지난 2016년부터 이뤄져 A씨가 가족 계좌 등으로 빼돌린 돈이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서류를 위조해 가족이 대표로 있는 법인 명의 계좌로 빼돌린 326억원의 경우,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해당 법인이 애초부터 횡령한 돈을 세탁할 목적으로 만들어 추적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A씨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횡령죄를 저지른 화이트칼라 범죄자 200명을 심층 면접 조사한 ‘부정(Fraud)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이들은 우선 금전적 어려움에 의해 ‘동기’를 갖게 된다. 이후 내부 통제 미흡·미약한 처벌 등 ‘기회’가 생기면 횡령을 저지른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행위를 횡령이 아닌 차용이나 보상이라고 ‘합리화’한다.
금융 당국과 금융사가 개입해 횡령을 예방할 수 있는 부분은 ‘기회’다. 이미 저축은행 횡령 사고가 일어났던 연초 1금융권에 대한 전수조사가 함께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금융 당국이 안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법·부당사항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세우는 등 보다 실효성 있고 강화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금융사도 내부통제를 철저히 하는 등 기회 자체를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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