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우승…‘K클래식’은 왜 세계 콩쿠르 휩쓰나

허진무 기자 2023. 8. 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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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윤한결이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잘츠부르크 국립음대) 대강당에서 열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 결선 무대에 서서 지휘하고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제공

가히 ‘K클래식’ 돌풍이라고 부를 만하다. 지휘자 윤한결(29)이 젊은 지휘자들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기악과 성악뿐 아니라 지휘 분야 세계적 콩쿠르에서도 한국인 우승자가 나온 것이다.

세계 어떤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국제 콩쿠르 성적은 압도적이다. 올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선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29), 첼리스트 이영은(25), 테너 손지훈(33)이 우승했다. 지난해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19)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8)가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 첼리스트 최하영(25)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29), 2021년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첼리스트 한재민(17)도 있다.

지휘 콩쿠르까지 석권한 ‘K클래식’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 심사위원단은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잘츠부르크 국립음대) 대강당에서 우승자로 윤한결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윤한결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결선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매우 영광이었고 기회였다”며 “리허설 때 준비했던 것들을 다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였고 연주가 제 예상보다도 잘 됐던 것 같다. 그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단은 “윤한결의 지휘는 카리스마가 있고 준비가 철저했으며 기술적으로 뛰어났다”며 “그의 지휘는 음악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게 한다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윤한결은 이날 결선 무대에서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 모차르트의 아리아 ‘오, 그대 온화한 별이여’, 신동훈의 체임버 오케스트라곡 ‘쥐와 인간의’를 지휘했다.

지휘자 윤한결이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잘츠부르크 국립음대) 대강당에서 열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 결선 무대에 오르고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제공

윤한결은 지휘자이자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대구 출신으로 서울예고 재학 중 독일로 건너가 뮌헨 음대를 졸업했다. 2015년 제네바 작곡 콩쿠르 2위에 올라 작곡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최근 지휘 활동에 집중해왔다. 지난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주최한 제1회 KSO국제지휘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2019년에도 그슈타드 메뉴인 페스티벌·아카데미에서 지휘 부문 1등상인 ‘네메 예르비상’을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 다니엘 바렌보임, 정명훈과 첼리스트 요요마 등이 소속된 기획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은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이름을 딴 국제 콩쿠르이다. 2010년부터 ‘네슬레 잘츠부르크 젊은 지휘자상’이라는 이름으로 열려 2021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세계적 클래식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카라얀 협회가 주최한다. 스트라스부르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아지즈 쇼하키모프(2016년 우승), 네덜란드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로렌조 비오티(2015년 우승), 버밍엄 심포니 음악감독 미르가 그라치니테 틸라(2012년 우승) 등을 배출했다.

올해 콩쿠르에는 54개국에서 323명이 출전했다. 심사위원단은 준결선 진출자 8명을 추린 뒤 지난 4월 경연을 거쳐 윤한결을 포함한 결선 진출자 3명을 뽑았다. 윤한결은 1만5000유로(약 2100만원)의 우승 상금을 받는다. 내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콘서트를 지휘할 기회도 얻는다.

콩쿠르에 강한 ‘K클래식’ 왜?
‘실기 연주력’ 집중 교육이 피운 꽃
콩쿠르에서 실력 입증해야 성공 길 열려
연주자의 개성을 키우지 못한다는 비판도

한국인은 왜 콩쿠르에서 강할까. 많은 전문가가 ‘K클래식’이라는 꽃을 피워낸 토양으로 한국 특유의 클래식 교육 시스템을 꼽는다. 클래식 영재를 조기 발굴해 ‘실기 연주력’ 중심의 혹독한 훈련으로 키워낸다. 많은 영재들이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나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에 집중돼 치열하게 경쟁한다. 한예종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금호문화재단 금호영재콘서트 등의 영재 등용문을 통해 풍부한 실전 무대 경험도 쌓는다.

박성열 추계예대 교수는 “콩쿠르 우승자들이 한국 클래식 시장을 이끌다 보니 학생들이 이론 공부보다는 실기 연주를 배우고 싶어한다”며 “학생들을 받쳐줄 훌륭한 현역 연주자 선생님들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고 말했다. “제가 음악을 공부하던 1980년대와 달리 지금은 현역 연주자들이 실질적인 노하우를 학생에게 전수해주니 연주력이 늘 수밖에 없죠. 전국 어디라도 외국 유학을 다녀온 현역 연주자가 있어요. 지금은 국내에서만 배워도 해외 유수의 콩쿠르를 휩쓸 정도입니다.”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은 모두가 콩쿠르 입상에 매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콩쿠르에서 실력을 입증하고 이름을 알려야 솔리스트(독주자)로서 성공의 길이 열린다. 세계적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조성진은 지난 2월 화상 인터뷰에서 “저도 콩쿠르 자체는 싫어하지만, 세계 무대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연주 기회도 생기고 매니지먼트 계약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해 6월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첼리스트 한재민이 지난해 11월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한국 클래식 교육이 연주 테크닉 향상에 몰두해 연주자의 개성을 키우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콩쿠르에선 여러 심사위원에게 골고루 호평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개성이 뚜렷한 연주자가 불리할 수 있다.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해 ‘천재 첼리스트’로 주목받은 한재민은 지난 4월 인터뷰에서 “콩쿠르를 준비하며 음악 해석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며 “나만의 튀는 아이디어보다는 절제된 해석을 선택해야 했다”고 전했다.

유명하지 않은 연주자들은 자비를 들여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야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다. 공연기획사에 대행 비용을 지불하고 예술단체나 기업의 후원을 얻어 독주회를 열어야 한다. 통상 외국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오는 연주자들은 ‘귀국 독주회’를 연다. 이마저도 공연장이 한정돼 대관 경쟁이 치열하다. 객석을 채우기 위해 연주자가 지인들에게 티켓을 나눠준다. 독주회 비용은 수백만원이 들지만 티켓 수입으로 충당하기 어렵다.

제1회 음악춘추 콩쿠르 우승자 출신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최운성은 “한국에선 콩쿠르를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처럼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장으로 생각하는데 그런 경향이 단기적으로는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면서도 “콩쿠르가 영재들에게 커리어의 시작을 열어주지만 콩쿠르 이후부터 진짜 음악가의 길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연주 기회가 오직 대가나 콩쿠르 입상자들에게 몰려 있죠. 콩쿠르에 나가거나 입상하지 않고서도 훌륭한 음악적 성취를 이뤄낸 분들이 많아요. 중견 연주자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콩쿠르 조명 뒤에는 ‘취업난’ 그림자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한국에서 연주자들의 일자리는 적다. 명문대 출신도 유학파도 취업난을 겪는다. 연주를 직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연주자는 극소수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KBS교향악단, 각 지방자치단체 소속 오케스트라들이 있지만 단원 선발의 문이 좁다. 연주자 대부분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부업으로 돈을 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클래식 음악인의 예술활동 개인 연수입은 평균 365만원이었다.

자연스러운 해결책은 클래식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에서 클래식은 ‘귀족 음악’이라는 정서가 지배적이었지만 ‘K클래식’ 돌풍에 힘입어 시장이 급성장했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과 달리 한국은 젊은 관객이 점점 늘어나는 점도 희망적이다. 지난달 내한 공연한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라하브 샤니는 “한국 관객은 세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젊고 열정적이다”라고 전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2년 공연시장 동향 총결산’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클래식 공연은 6894건으로 전년보다 26% 늘었다. 티켓판매수는 약 244만매로 전년보다 82%, 티켓판매액은 약 648억원으로 전년보다 7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코로나19로 해외 유명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이 주춤한 사이 국내파 연주자들이 입지를 견고히 했고 동시에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국내 연주자들이 스타 반열에 오르며 전석 매진을 이끌어냈다”며 “코로나19 영향력이 컸던 시기이지만 2019년 대비 최소 2배 이상의 성장을 이뤄냈다”고 적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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